알마티에서 보내는 편지 - 2022년 4월 (66호)

 주 안에서 열방의 증인으로 함께 부름받은 동역자님께 알마티에서 문안드립니다. 올 여름은 저희 가정이 카자흐스탄으로 파송받은지 만 12년이 됨과 동시에 세 번째 파송 주기가 끝나는 시점입니다. 지난 기도편지에서 올해는 재파송을 받지 않고 카작에서의 현장사역을 종료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카작으로 파송받기 위해 훈련 기간 포함해서 2년 이상의 실제적인 준비과정을 거쳤듯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결정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 만큼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지난 몇 개월동안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명료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기도편지에서 카자흐스탄에서 막 발생한 유혈사태 소식을 전해드렸는데 다행히도 이곳 정세는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가스 값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촉발된 이번 사태로 인해 160명이 사망하고 8,000명이 체포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카작 정부의 요청으로 러시아군이 카자흐스탄으로 진입해 무장 시위대를 진압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알마티 무장시위는 러시아군이 개입한 이후 빠르게 진정되었습니다. 인터넷 연결도 복구되고 거리의 상점들도 시위의 흔적을 지우며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이건 도시 내 상황이고 조금만 떨어진 외곽 마을의 긴장감은 오랜 기간 이어졌습니다. 시위대가 도시 외곽으로 피신하자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군인들이 집집마다 수색했고 사람들은 겁에 질리고, 다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정부는 시위가 발생하자 국민들의 삶을 잘 챙기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고 시위를 무력진압한 정부에 대한 반감은 늘어갔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자기 나라 백생에게 총을 겨누냐고 묻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가슴아픈 이야기를 한참동안 들어야 했지요. 자녀 잃은 부모들의 절규와 정부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죽어간 젊은이들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와중에 저희 가정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올 3월, 군 입대를 앞둔 형민이의 알마티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입국 이틀을 앞두고 이번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바람에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고 형민이도 올 수 없었습니다. 당분간 저희 다섯 식구가 알마티에 다시 모이기가 쉽지 않기에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애쓰며 일정을 조정해서, 사태가 조금 진정된 1월 말에야 어렵게 형민이가 알마티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코로나 기간 대학 2년을 보내면서 하나님 은혜로 좋은 교회, 좋은 친구들을 만나 한국생활에 잘 적응했지만 이번에는 꼭 알마티에 오고 싶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온 가족이 다시 한번 텐샨학교 교정에 설 수 있었습니다.

 형민이가 와 있는 동안 우리는 형민이가 주일학교 교사로 돌봤던 아이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형민이가 보고 싶어하는 아불라이도 만나고 그 집 아이들도 늘 얘기하던 형민이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유혈사태 기간이라 교회 대면 모임이 불가능했지만 이렇게 심방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형민이와 이선화 M이 두번째로 코로나에 확진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증상은 첫번째 코로나에 비해서는 경미했지만 PCR 음성 증명서가 있어야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기에 형민이의 귀국 일정이 미뤄져야 했고 온 가족이 PCR 검사 결과에 촉각을 기울였습니다. 3월 28일이 형민이의 입대 예정일인데 자칫 그 때까지 한국에 못 들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2주 후 결과는 음성이었고 3월 2일 대학 개강에 맞춰 시은이가 먼저 한국에 들어갔고 형민이가 그 뒤로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가정이 섬기는 현지 교회는 2월말부터 다시 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극복하고 이제 대면모임을 시작하나 했는데 다시 발생한 유혈사태로 모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모든 과정을 지나 다시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카자흐스탄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속을 하는 몇몇 쇼핑몰 내부에서만 형식상 마스크를 걸고 다니고 이미 코로나 시국은 완전히 끝난 모습입니다. 카자흐스탄 최대 명절 중 하나인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는 교회 모임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양과 말씀에 이어 맛있는 식사와 선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일 대면예배가 시작되었지만 아프거나 집이 멀어서 참석하지 못하는 지체들에게는 심방을 갑니다. 이선화 M과 아이샤, 쿠므사이가 한 팀이 되어 방문합니다. 아이샤 아주머니는 말씀을 나누시고 쿠므사이는 기도를 인도하고 이선화 M은 찬양을 이끌면서 작은 교회가 되어갑니다. 이 때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요. 방문하는 가정도, 찾아가는 사람도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사진은 누르자말 가정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누르자말은 알마티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우즌아가쉬에서 살고 있습니다. 2년 전 딸 쟌사야를 하늘나라로 보낸 바로 그 가정이지요. 작년 말에 새 아기를 출산해서 지금은 아들만 넷을 둔 가정이 되었습니다. 누르자말의 남편 예를란은 가정을 잘 돌보지 않습니다. 직장도 꾸준히 나가지 못하면서 은행빚이 쌓여 집이 경매로 넘아갈뻔 했고 최근에 끊었던 술을 다시 시작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런 문제 속에서도 누르자말은 꾸준히 온라인 기도외에 참석하며 믿음을 지켜가고 있기에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모릅니다. 코로나 기간을 거치며 여성 성도들의 온라인 기도회는 그 힘을 발휘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온라인으로 모여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데 누르자말도 여기에 접속하며 함께 이야기하고 찬양하면서 은혜의 예배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3월이 되어 시은이의 대학 입학과 형민이의 군 입대를 돕기 위해 이성훈 M이 한국으로 잠시 들어가 있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모임들이 있었습니다. 사진은 여성의 날을 맞아 교회 자매들이 저희 집에 모여 식사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저희 교회는 저희 가정과 다른 한국인 M 가정이 함께 현지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다른 가정도 현재 5개월째 한국에 체류하고 있어서 이성훈 M이 자리를 비우면 이선화 M 혼자 교회와 성도들을 챙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기쁨으로 사람들을 초청하고 만나며 교회는 더욱 단단해져 갑니다.

 한동안 멈췄던 청소년모임도 재개되었습니다. 토요일마다 말씀 나눔과 기타 교실을 계속하고 있는데 지난 겨울 꾸준히 기타 교실을 수강한 아이들에게 중고 기타를 하나씩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자라 교회 교사가 되고 찬양인도자가 되는 것을 꿈꿔 봅니다. 머지 않아 그렇게 되겠지요. 볼링장 앞에서의 모습인데 가끔 아이들과 영화도 보고 볼링도 치고 있습니다.

 우리집 막내 성은이는 12학년이고 오는 6월 9일 텐샨학교를 졸업합니다. 오빠, 언니가 한국으로 떠난 이후로 교회 주일학교를 혼자 담당하고 있습니다. 언니가 알마티를 떠나는 날, 두 자매는 펑펑 울었습니다. 서로에게 누구보다 친한 친구이기도 했는데 그래도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성은이도 알마티 텐샨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대학 진학을 앞두게 됩니다. 오빠, 언니의 졸업과 대학 입시를 옆에서 지켜보며 자기는 벌써 두 번이나 졸업했다고 말하는 성은이는 또 다른 반전매력의 소유자입니다. 언제나 침착하고 판단력이 뛰어나지요.  

 오빠에 이어 한국 대학에 진학한 시은이는 3월 2일 개강을 맞았습니다. 다행히 대학교 내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어 숙소를 구해야 하는 어려움은 덜었지만 학기 초는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수업을 받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시은이의 경우 한국에서 1년간 공부하고 11년을 해외에서 영어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부하는 언어로서의 한국어가 쉽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글쓰기가 어렵지요. 이번에 몇몇 과목에서 중간고사 대신 소논문 작성 과제가 있었는데 해외고 출신인 시은이에겐 가장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래서 우린 늘 얘기합니다. 시은이가 엄청난 도전을 하고 있다고... 오빠인 형민이는 국제학부이기 때문에 전공과목은 다 영어로 이뤄지는데 시은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어려운 길을 가고 싶어하는 시은이가 새로운 도전을 주 안에서 잘 감당하길 바랄 뿐입니다.

 형민이는 3월 28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입소 당일, 점심으로 곰탕을 주문했지만 전혀 못 먹고 국물 몇 숟가락만 들었습니다. 입소 직전 카페에서 받아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한 모금도 못 마셨습니다. 그 정도로 바짝 긴장하고 있었지요. 사진은 형민이가 훈련소에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아빠와 동생의 응원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는데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5주가 지난 5월 1일 논산훈련소를 무사히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훈련소 이후 형민이가 근무할 부대가 바로 논산 육군훈련소 로 배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형민이는 훈련소 생활이 즐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훈련소 조교에 지원했고 합격해서 앞으로 군 생활을 논산훈련소 시범 조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에서 아랫줄 우측에서 세번째가 형민입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지난 12년간 기도편지를 받아보셨던 후원자님들은 저희 삼남매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잘 아시기에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맘이 저희와 같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염려해주시고 기도해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알마티 집에서 마지막으로 모였던 다섯 식구 모습입니다. 사진에는 생후 2주부터 10년간 우리 가족과 함께 지냈던 태풍이(세퍼드, 10살)의 모습도 보입니다. 알마티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교회와 이곳 지체들을 더욱 챙기게 되지만 태풍이도 저희 마음에 큰 짐이 되고 미안해집니다. 체중 35Kg의 대형견인 태풍이는 비행기를 탈 수도 없고 한국 아파트에서는 지금처럼 줄에 묶이지 않은 채 자유로운 생활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마지막까지 태풍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린 가족이니까요.

저희 부부는 6월 9일 성은이의 텐샨학교 졸업식을 끝내고 주변을 정리하는대로 지난 12년간의 현장사역을 종료하고 성은이와 함께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 파송교회와 파송단체는 4년을 한 사역주기(term)로 하고 있기에 세번째 주기가 끝나는 올 여름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에 적절한 시점으로 보입니다. 카자흐어를 10년 이상 사용하며 현지교회 사역을 한 사역자로서, 현지 의사면허까지 보유하고 러시아어로 진료와 교육사역을 했던 사역자로서, 알마티의 MK학교에서 9년간 행정으로 섬겼던 사역자로서, 향후 더 긴 호흡으로 카자흐스탄을 섬길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은 저희 인생의 또 하나의 여정을 마무리 지으며 또 다른 부르심으로 나아갈 때인 것 같습니다. 다음 번 기도편지에서 구체적으로 좀 더 나누고 재정후원 종료시점까지 말씀드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2년간의 지난 사역을 생각하면 언제나 감격스럽고 감사하고 놀랍지만 이곳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지금의 감정은 슬프고 착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저희 부부에게도 알마티와 카자흐스탄은 고향처럼 편하고 안정되고 자유로운 곳입니다. 2001-2003년 KOICA 국제협력의사 시절까지 합치면 도합 1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곳 사람들(카작 사람들, 이곳의 M들)과 함께 살며 친구로 지냈고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쌓아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떠나야 한다고 했을 때 드는 감정들을 잘 다루기 위해 우리는 오랜 기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2년간의 기다림에도 새로운 의료사역의 문이 열리지 않고 현지 교회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며 삼남매 모두 한국으로 떠나는 지금의 시점이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이곳으로 오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늘 약하고 흔들리지만 언제나 완전하신 그 분의 계획을 신뢰합니다.

 

[ 기도 제목 ]

1. 저희가 섬기는 현지 교회는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고 대면 예배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발생한 유혈시위사태로 다시 대면모임이 불가능했지만 2월말부터 으르겔르와 깔까만 센터에서 주일 예배를 재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로 비온 뒤 땅이 더 굳듯이 교인들이 말씀과 기도에 더 집중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성도들이 함께 모이지 않으면 믿음이 약해지고 마음이 어려워진다며 모임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면예배는 물론 아침마다 가지는 온라인 기도회와 심방을 통해 더욱 깊이 주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의 갈망을 통해 교회가 더욱 주님 안에 뿌리 내리고 굳게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2. 누르자말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남편 예를란과 믿음으로 하나되도록, 큰 아들 잠불랏이 내성발톱으로 발톱을 뽑는 시술을 받았는데 감염이 생겨 염증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잘 나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교회 리더 중 하나인 코사인과 마디나 가정이 연초 이후 믿음의 열심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럼없는 아버지로 세워지고 교회 앞에 믿음의 남편으로 좋은 본이 될 수 있도록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3. 저희 가정은 많은 변화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들의 졸업 이후, 입학, 입대의 과정들을 한국에서 떨어진 카자흐스탄에서 지켜봐야 합니다. 올 여름 시작될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도 우리가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봐야 알 수 있는 것들만 남아 있습니다. 처음 카자흐스탄으로 나올 때처럼 한국으로 다시 들어가는 과정도 그 분의 예비하심이 잔잔히 흘러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파송교회와 파송단체가 관련 절차를 은혜 가운데 잘 진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기도편지는 매 3개월마다 동역자님께 배달됩니다.  

동역자님의 기도와 후원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사역합니다.

이성훈, 이선화, 형민, 시은,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