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 보내는 편지 - 2020년 11월 (61호)
주 안에서 열방의 증인으로 함께 부름받은 동역자님께 알마티에서 문안드립니다. 그동안 저희 가정은 잠시 한국에 들어갔다가 지난 10월 13일 알마티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두달 남짓 집을 비운 탓에 보일러도 고장나 있고 화장실도 수리가 필요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적잖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여전히 이곳의 코로나 상황은 녹녹치 않습니다. 오늘 확진자수는 610명 인데 한국으로 들어갈 당시보다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감염 위험이 높은 상태입니다. 거리 곳곳에 마스크를 꼭 쓰라는 현수막과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마스크 없이 돌아다닙니다.
11월 13일 현재까지 카자흐스탄의 코로나 확진자는 모두 11만 9천명으로 한국(2만 8천명) 보다 많습니다. 전체 인구로 따지면 한국의 35% 밖에 안 되지만 환자수는 4배가 넘는 것을 보면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 이곳 역시 바이러스 전파에 취약한 사회 문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보더라도 열이 나고 호흡기 증상이 있더라도 검사를 받거나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이기에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아시아 5개국 중에서도 카자흐스탄의 확진자수가 가장 많은데 우즈베키스탄(6만 8천명), 아제르바이젠(6만 5천명), 키르기스스탄(6만 3천명), 타지키스탄(1만 1천명) 정도입니다.
지난번 기도편지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저희 가족은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행 항공권을 구해도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상황이었지만 몇 개의 추가 서류 작성 후 오랜 기다림 끝에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로도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과 함께 해외입국자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던 입국심사 전, 자가격리앱을 설치했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 누구도 일체 접촉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분리되어 교통편이 안내되었습니다. 그 많은 과정을 어떤 불편함도 없이 매끄럽게 처리하는 한국의 방역 행정능력을 보며 감탄할 수 밖에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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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시민과 격리되어야 하기에 우리가 탄 KTX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7시간 이상 밤새도록 날아와 까다로운 입국 과정을 거쳤기에 피곤에 지친 아이들은 바로 곯아 떨어졌지요. 이번 일시귀국에서 맞닥뜨린 문제는 우리가 머물 안식관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입국 후 2주 동안은 자가격리가 필요하기에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안식관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입주 전후의 소독절차와 1인당 필수 공간 확보 때문에 해외에서 들어오는 선교사들에게 개방되는 안식관은 극히 적었습니다. 여기 저기 수소문 끝에 저희 파송교회인 포항충진교회 안식관이 그 주에 비어 있음을 알게 되어 포항 충진교회 안식관에서 지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예비하심이었지요. 포항 KTX 역에 도착하니 보건소 관계자들이 마중 나와 있었고 보건소 승합차를 타고 북구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 뒤 안식관까지 보건소 차량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검사는 자가격리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모두 두 번 받았습니다. 알마티에서도 거의 자가격리 수준으로 지냈었기에 자가격리는 큰 불편함이 없었고 오히려 안전한 장소에 와 있다는 안도감으로 한국의 창밖 풍경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릿 시내가의 엘리야에게 날아온 까마귀처럼 충진교회의 많은 분들이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포항 안식관에 도착하자말자 다른 가족보다 6주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던 이선화 M과도 상봉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고 자가격리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자가격리가 끝난 뒤 온 가족이 포항 시내로 들어가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입니다. 포항은 우리에게 특별한 곳이지요. 사역지로 나가기 직전 4년동안 살면서 아이들은 유치원, 초등학교에 입학했었고 우리 부부는 충진교회와 선린병원을 통해 사역지에 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조금씩 한국 생활을 하면서 우리를 억누르고 있던 긴장감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알마티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지요.
서울로 올라가 혼자 살고 있는 형민이를 만났습니다. 입학식도 없이 온라인 수업만 하고 있는 대학생... 처음에는 기숙사가 배정되지 않아 염려도 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사진에서 보이는 아현성결교회에서 운영하는 성결학사에 들어갈 수 있었고 어수선한 코로나 시국에서 교회 중심으로 생활할 수 있는 유익이 생겼습니다. 형민이는 주일 예배 때는 교회 방송실에서 섬기고 교회 찬양팀에서 일렉기타도 치면서 몇몇 사람들과 새로운 찬양모임도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일학교 온라인 예배를 위한 영상 작업도 한다는데...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 성숙해져가는 아들을 보는 기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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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민이가 아르바이트 하는 샌드위치 가게도 가 봤습니다. '잘 하고 있을까...' 염려도 됐지만 가게 안에서 손님을 받고 배달도 하며 사회생활을 배우는 아들을 보니 애처로움과 감사함이 함께 밀려왔습니다. 지금 고생이 평생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온 가족이 6개월 만에 모두 모였습니다. 학사관 앞에서 형민이가 말합니다. "아빠가 내가 사는 공간에 와 있다는게 믿겨지지 않아요." 오랜 기간 홀로 떨어진 형민이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름은 이선화 M의 치료 스케줄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지난 6월, 극심한 코로나 사태 속에서 이선화 M 혼자 검사를 받고 오기로 하고 홀로 출국했었는데 유방 조직 검사에서 7개의 유방 결절을 맘모톰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나머지 가족이 뒤늦게 따라 입국한 것입니다. 맘모톰은 전신 마취 수술이 아니라 국소 마취 하에 유방에 0.3cm 정도의 구멍을 뚫고 굵은 바늘을 집어 넣어 진공 흡입을 통해 조직을 빨아들여 잘라내며 제거하는 시술입니다. 7개의 결절 모두를 한 번에 제거하는게 무리라서 두 차례로 나눠 시술을 받아야 했고 부산 세계로병원에서 8월 19일에 1차, 9월 9일에 2차 시술을 받았습니다. 포항에서 지내면서 부산을 오가며 외래 진료와 시술을 받아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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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송교회와 많은 분들의 기도 덕택에 두 차례에 걸친 맘모톰 시술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시술 때마다 하룻밤 입원해야 하는데 입원실에서 만났던 유방암 환자들과의 대화가 기억에 오래 남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맘모톰은 바늘을 이용한 조직검사와 달리 제거한 결절 전체를 다시 조직검사로 확인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두 번의 맘모톰을 마치고 최종적으로 조직을 확인한 날은 9월 22일입니다. 우리는 10월 11일 항공편으로 알마티로 돌아갈 예정이었고 별 걱정없이 맘모톰 조직 결과를 확인하러 포항에서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최종 조직검사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맘모톰으로 제거한 7개의 결절 중 좌,우 유방에서 각각 1개 결절에서 악성종양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비정형 조직이 나왔고 이 경우는 비록 결절을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잔존 조직이 있을 수 있기에 결절 주변 조직을 더 광범위하게 제거해야 했습니다. 적어도 정상 조직이 1 cm 이상 포함되게 주변을 절제해야 하기에 전신마취 하에 좌, 우 유방의 부분절제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출국을 2주 반 남긴 시점에 나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2층 외과 외래에서 잠시 의논한 뒤 이틀 뒤에 바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는 것을 더 뒤로 미루기 힘든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알마티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술방으로 들어가기 직전입니다. 맘모톰 때는 양가 부모님께 알려드리고 기도를 요청했지만 전신마취 수술 때는 너무 걱정하실까봐 차마 부모님께 알려드리지도 못했습니다. 대신 파송교회와 현지 친구들에게 기도요청을 했지요. 막상 이런 일이 겪으니 모두가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그렇게 수술을 받았고 9월 26일 퇴원한 뒤 10월 11일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왔습니다.
수술 후 바로 추석 명절이 다가 왔습니다. 10년만에 한국에서 맞는 추석인지라 가족, 친지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술후 충분히 안정을 취하지 못하고 잦은 이동과 만남 때문인지 좌측 수술 부위에 염증이 발생하면서 출국 직전까지 항생제 주사를 맞다가 귀국해야 했습니다. 귀국 후에도 열차와 항공편 이동으로 인한 진동 때문에 다시 염증이 심해져 현지에서 항생제를 구해 주사를 맞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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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와 똑같은 항생제 주사는 구할 수 없어 비슷한 계열로 구해 집에서 주사를 맞으며 한국에 문의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상당히 증상이 좋아졌습니다. 많은 일들을 겪으며 가족의 소중함과 사역지에서의 건강 관리를 깊이 느낀 시간이었지요.
두달 남짓 포항에서 지내는 동안 가끔씩 아이들과 추억의 포항 해변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주일예배를 교회에서 드릴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거리두기 2단계 상황인지라 유튜브로 온라인 예배가 드려졌고 파송 교회는 출국 전날 주일예배에 참석해서 교회 앞에 인사드리는 걸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래도 새로 오신 담임 목사님을 만날 수 있었고 오래 전 함께 교회를 섬겼던 분들과 반가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지요. 눈물로 기도해주신 많은 분들이 생각납니다. 전국 각지에 뵈야 할 분들이 많음에도 개별적인 모임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인지라 연락드리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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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 와 있는 동안 이제 대입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시은이의 초등학교 기록을 얻기 위해 포항동부초등학교 교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시은이는 이번 학년을 마치면 대학으로 진학하게 됩니다. 해외에서 11년을 공부했지만 한국으로 대학을 가고 싶어하지요.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 중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첫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뒤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포항에서 머무는 동안 이성훈 M은 주 2회 포항선린병원 내시경실을 방문했습니다. 사역지로 나가기 전, 4년간 근무했던 직장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함께 근무했던 최바울 과장님의 배려 속에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내시경 술기들을 다시 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10년 만에 대장내시경 검사, 대장용종절제술 등을 해볼 수 있었지요.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간호사 중 몇몇은 아직도 그대로 있기에 10년이 지나도 편하게 예전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선린병원을 출입하면서 오래된 직원, 이미 퇴사한 직원들도 만날 기회도 많았습니다. 병원 안팎에서 깊은 감회에 빠지게 만드는 무수히 많았지요. 출국 직전 세번째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포항의료원을 방문했었는데 거기에서도 이전에 선린병원에서 근무하셨던 선생님들을 만나 많은 도움과 격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올 여름... 모두 너무 고마웠습니다.
한국에 와 있는 두달 남짓 기간 동안 형민이를 세 번 만났습니다. 세번째 만남은 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가는 출국날, 서울역에서 있었습니다. 네 사람이 14개의 여행용 슈트케이스를 끌고 포항에서 인천공항까지 가야했기에 일손이 필요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도심공항 서비스가 중단된 점이 아쉬웠습니다. 모든 짐을 가지고 서울역까지 와서 공항철도로 갈아탔는데 형민이도 서울역에 나와 짐을 날랐습니다. 서울역 근처에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낼 아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가졌습니다.
서울역에서 헤어질 때 형민이가 마지막 인사를 하며 찍은 사진입니다. 이제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형민이가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은 M 가족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들을 지키고 인도하심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더욱 맘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동생에게도 서울에 혼자 열심히 살아가는 형민이의 모습이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길 기도합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한국을 떠났습니다.
밤새도록 하늘을 날아 알마티로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알마티가 생활의 터전이지요. 1주일 동안 보일러, 화장실 수리에다 집안 청소로 바쁘게 지냈습니다. 3개월 전에 비해서는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이곳도 마스크를 써야 하고 코로나 공포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미등록교회이기도 하고 자체 종교건물이 없기에 아직 대면예배보다는 온라인 예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 있는 동안에도 알마티 교회 지체들과 늘 주일 예배를 함께 드렸지요. 줌 비디오를 통해 주일과 수요모임을 진행하고 있는데 귀국 이후 매주 교인들의 가정을 찾아다니는 심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알마티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쿠머스아이 집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이곳 사람들의 꿈은 조그만 땅에 자기 집을 짓고 사는 일인데 최근 쿠머스아이는 집을 짓고 새 며느리도 맞아들였습니다. 스티로폼을 덕지덕지 외벽에 붙여놓은 이 집이 바로 쿠머스아이의 새 집입니다.
현지 성도들과 한 상에 둘러앉아 주님 이름으로 교제하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 드리는 온라인 주일예배는 한국의 온라인예배와는 다르게, 줌비디오를 사용해서 회의하는 것처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메시지를 듣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상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사회자나 목사님 모습만 화면에 계속 나오지만 이곳은 예배를 참석하는 모든 사람의 얼굴을 똑같이 볼 수 있기에 오히려 평소의 대면예배보다 더많이 성도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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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도 이런 방식으로 각자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돌아가며 기도합니다. 그래도 코로나 사태가 속히 종식되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예배와 기도회를 드릴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알마티로 돌아온 시은,성은이는 1주일에 이틀 학교에서 가서 수업을 해오다 1주 뒤부터는 매일 학교에서 대면수업을 하게 됩니다. 이곳의 공립학교는 여전히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립학교는 이렇게 대면수업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날씨가 추워지면서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느는 추세라 긴장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올 가을에는 축구시즌이 없었다는 겁니다. 코로나 사태로 알마티 학교 리그나 중앙아시아 학교 리그가 취소되면서 가을마다 반복되는 극적인 드라마를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축구를 잘하는 시은이는 이렇게 마지막 학년을 보내는게 아쉽기만 합니다. 사진은 며칠 전 교내 행사로 열린 2대2 축구 토너먼트 결승에 진출한 시은이 모습입니다.(맨 왼쪽이 시은입니다) 남자 아이들과의 경기에서도 밀리지 않지요^^ 어려운 시기를 묵묵히 이겨내며 한국으로의 진학을 준비하는 시은이가 대견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다시 돌아온 알마티에서 네 식구가 살아갑니다. 아직 코로나 사태가 진행 중이기에 여전히 많은 제약이 있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선하고 정확합니다. 사역지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길을 순종하며 따라가는 인생입니다. 저희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현지인들에게 흘러가기를, 우리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현지인들 가운데 일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짧은 한국 방문 기간 동안 사랑과 정성으로 섬겨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하나하나 기억하시고 갚아주시길 기도합니다.
[ 기도 제목 ]
1.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아이들도 말 못할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봉쇄는 한국에서는 벌어지지 않았던 일입니다. 도시 외곽을 콘크리트 벽과 장갑차로 막은 채 집에서 2Km 이상 이동하지 못하게 제한했으며 식료품점 외에는 모든 상업시설이 폐쇄되었습니다. 버스는 물론 기차나 항공기도 운행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외국인의 입국이 금지되었기에 올 여름 우리가 한국에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기간 학교도 가지 못한채 수개월 동안 집 안에만 갇혀 지내다 보니 아이들의 생활 리듬은 끊어져 버렸고 한국으로 혼자 떠난 이선화 M 때문에 아빠와 지내게 된 두 딸의 마음에도 여러 부담이 있었겠지요. 한국에서의 시간 역시 엄마의 시술과 수술로 인해 걱정이 많았고, 시차를 이겨내며 학교 온라인 수업에도 참석해야 하는 분주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알마티로 돌아온 지금은 네 식구가 조금씩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이고 이로 인해 모든 것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이선화 M의 수술 부위가 완전히 아물고 치유될 수 있도록, 두 딸이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잘 회복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2. 사역자의 길을 걷다보면 하나님께서 여실 때가 있고 닫으실 때가 있음을 압니다. 그 분께서 보여주시는대로 순종하며 사는 삶이 사역자의 삶이자 우리 모두의 삶입니다. 매주 진행되는 심방과 현지인들과의 만남 속에서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이뤄지는 대면 접촉이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지혜롭게 잘 조절할 수 있도록, 특별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합니다.
기도편지는 매 3개월마다 동역자님께 배달됩니다.
동역자님의 기도와 후원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사역합니다.
이성훈, 이선화, 형민, 시은,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