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 보내는 편지 - 2020년 4월 (59호)

 주 안에서 열방의 증인으로 함께 부르심을 받은 동역자님께 알마티에서 문안드립니다. COVID-19 사태로 전 세계가 전대미문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곳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학교나 교회 모임은 물론 모든 식당, 가게(식료품점 제외)가 문을 닫게 되면서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하던 일을 멈추고 집 안에 머물게 되었고 하늘을 올려다 보며 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반가운 것은 뉴스를 통해 한국 사회가 조금씩 코로나의 공포에서 벗어난다는 소식인데 이곳도 앞으로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3월 16일에 1번 환자가 발생하자마자 국가비상사태가 발령되었고 알마티, 누르술탄을 포함한 대도시 지역이 전면 봉쇄되었습니다. 시 경계 초소마다 콘크리트 블록과 장갑차가 주요 도로를 막고 있고 3월 말부터는 외국을 오가는 항공과 철도 편이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어렵게 마지막 항공편을 구해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영국과 호주 가정을 돕느라 바쁘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학교는 3월 16일부터 4주간 휴교에 들어갔고 그 후론 온라인 수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의 코로나 확진자 현황을 알려주는 휴대폰 앱입니다. 카자흐스탄 확진자 수는 4월 25일 기준으로 2,484명 인데 처음에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에 불만을 보였던 사람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잘 협조하고 있습니다. 중단된 경제활동으로 힘든 사람들이 많은지라 이곳 정부에서도 매월 약 110$ 정도의 긴급 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알마티 확진자 수는 864명 정도인데 저희 집 주변, 특히 식료품을 주로 구입하는 마트 주변에서도 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 저희도 나름 긴장하고 있습니다. 확진자의 30%가 의료인이라는 얘기도 듣고 있는데 이곳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은 구 소련권 지역인지라 국민들이 정부의 권위주의식 강력한 통제에 순응해서 웬만하면 집 밖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교회 소식을 나누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직전인 2월 중순, 그동안 뇌종양으로 투병했던 쟌사야가 하나님 품으로 떠났습니다. 호흡곤란이 심해져 병원으로 실려간 다음 날, 쟌사야의 임종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슬픔에 잠긴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교회 성도들과 알마티 서쪽 100Km 우즌아가쉬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입관하기 전, 쟌사야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숨이 차지 않은 듯.. 깨끗한 얼굴로 평온하게 누워 있는 쟌사야의 볼에 손을 대며 "우리 천국에서 만나자" 고 얘기했습니다. 많은 이웃 사람들이 찾아왔고 슬퍼하는 모친, 누르자말을 포옹하며 위로했습니다. 어떤 말도 필요없고 그저 끌어안고 비통한 맘을 나눌 뿐입니다.  

 시골의 작은 마을 장례식이다보니 관을 옮기고 땅을 파는데는 전적으로 이웃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트럭에 관을 싣고 2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공동묘지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따뜻한 볕에 눈이 녹아 관을 매고 오르는 언덕 비탈길은 진흙탕에 무척 미끄러웠습니다.

 마을 장정들이 공동묘지 옆의 한 구석에 땅을 파고 있습니다. 나무로 된 관은 없습니다. 시신은 천으로 싸여 사진에 보이는 금속 관에 옮겨져 여기까지 올라왔고 이렇게 땅에 묻힙니다.  

 양지바른 언덕 한쪽, 녹은 눈 사이로 남모르게 싹을 피운 들꽃이 보입니다. 모두의 눈에는 절망스러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미 파랗게 올라와 있습니다. 잔사야의 남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일 예배 때마다 누구나 회중 앞에 나와 기도제목을 말할 수 있고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사진 속에 나온 세 명의 성도들은 모두 아들이나 남편이 감옥에 있거나 경찰에 쫓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금의 어려운 시간을 통해 남편과 아들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길 원하는 기도제목을 나누고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응답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여기 또 한 가정이 있습니다. 15년 전 교통사고로 안면함몰로 재건성형술을 받고 주님을 영접했던 굴루루가 셋째 아기를 출산하고 교회 앞에 처음으로 아기를 데리고 나온 날입니다. 굴루루 옆에는 아내의 권유로 교회에 나온 옐라만이 서 있습니다. 옐라만은 이제 막 교회 출석을 시작했지만 좋은 성품을 갖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옐라만을 변화시켜 주시면 교회의 리더로 성장하리라 기대합니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지요. 이 형제를 위해 모두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은 주일이었기에 저희 교회와 자랴치니 교회가 함께 모여 이 나라의 가장 큰 국경일을 축하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기 전에 저희 집에서 모였던 교회 리더모임입니다. 열흘 뒤 정부 방침에 따라 카자흐스탄의 모든 교회에서 현장 예배를 드릴 수가 없게 되자 주일예배는 Zoom을 이용한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고 벌써 6주째를 맞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날벼락이지요. 주일 아침 11시에 Zoom을 통해 성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기쁘긴 하지만 예배 시간을 맞추거나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게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온라인으로 말씀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찬양을 들으며 주일 예배를 대신하고 있지만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수요일에도 가정별로 기도제목을 나누며 안부를 나누는 모임을 갖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길어지는 도시 봉쇄에 지쳐가는 모습도 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가 빨리 개발되어 이전처럼 함께 모여 예배하며 서로를 격려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갈 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든 악과 시험에서 지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3월 16일부터 텐샨학교를 가지 않는 우리 아이들은 이제 이 새로운 생활에 적응했습니다. 사실 학교가서 공부하는 것보다 온라인 수업이 훨씬 더 힘들다고 합니다. 숙제도 많아졌고 학교 찬양팀, 학생회 및 방과 후 활동, 스포츠 활동을 못하게 되면서 무기력해지는 면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서로 집안 일을 도우며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덕분에 태풍이(저희 집 개)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봄이 왔지만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답답합니다. 거리에서 경찰의 검문을 받게 되고 일정 거리 이상 차를 몰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집 마당에 피어 오르는 민들레꽃을 꺾어다가 화병을 만들었습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시장에서 꽃 모종을 사다 심었는데 올해는 이런 일도 부담스러워 여기저기 올라오는 노란 민들레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끔 서울에 있는 형민이와 온 가족이 화상통화를 할 때가 그래도 가장 시끌벅적한 때지요. 형민이는 이제 교회 모임, 학교 모임(동아리 모임)에도 나가면서 한국 생활에 적응해가는 것 같습니다.

 사역지에서 사역자로 살고 있지만 현지인을 만날 수 없고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다는 특별한 상황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을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저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의 끝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아멘.

[ 기도 제목 ]

1. 쟌사야는 세상을 떠났지만 모친인 누르자말은 지금도 주일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도시 봉쇄 때문에 심방을 갈 순 없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잔사야의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 가정 속에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2. 주일 예배와 소그룹 모임이 전면 중단된 상황이지만 저희 교회는 온라인 주일예배를 드리며 왓츠앱 기도방을 통해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잘 넘기고 날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3. COVID-19 로 인해 온 세계가 질병은 물론 경제활동 마비에 힘들어 합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이 더 어려운 현실입니다. 하루 빨리 코로나 치료제가 나와 이 사태가 속히 종식되길 기도합니다.

4. 카자흐스탄의 봉쇄 정책으로 인해 저희 가정도 많은 불확실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올 여름 한국 방문시에 후원자 방문과 의료 연수를 계획했지만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지요. 앞으로의 계획과 사역도 주님이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기도편지는 매 3개월마다 동역자님께 배달됩니다.  

동역자님의 기도와 후원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사역합니다.

이성훈, 이선화, 형민, 시은,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