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 보내는 편지 - 2018년 10월 (53호)
주 안에서 한 마음으로 늘 저희 가정과 함께 해 주시는 고국의 동역자님께 중앙아시아 땅에서 문안드립니다. 기도편지가 좀 늦었지요? 지난 7월 6일부터 8월 7일까지 한국에서의 짧은 안식월을 보내고 현장으로 복귀한 뒤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 생기면서 일찍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고 나와 있다 보면 자칫 일 중심으로 치우치기 쉬운데 이렇게 소식을 전할 때마다 고국의 교회와 동역자님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저희 가정의 부르심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카자흐스탄의 공휴일인 '쿠르반아이트' 떄 집 근처 시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희생절' 이라고도 불리는 '쿠르반아이트'는 이슬람 신자들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양을 잡고 코란을 읽으며 알라신께 감사를 드리는 명절입니다. 라마단 종료 후 70일 째 지키는 이 명절은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 대신 양을 잡아 희생을 드렸다는 왜곡된 주장을 들을 수 있지만, 양을 잡아 희생절을 지킨다고 우리 죄가 깨끗해질 수 있는가 라고 이슬람 신자들에게 질문함으로써,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드리신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는 좋은 접촉점이 되기도 합니다.
팔려 나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무리 속 양의 순박한 눈을 볼 때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구체적으로 묵상하게 됩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부르심에 순종하고 카자흐스탄으로 파송받은 지 벌써 만 8년이 흘렀습니다. 저희 가정의 파송교회인 포항충진교회는 모든 파송 M 에게 매 4년마다 재파송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기에 지난 여름 저희도 재파송 절차를 위해 일시귀국해서 포항에 머물렀습니다. 사실 모든 M들이 충진교회 파송 M처럼 매 4년마다 지난 4년간의 사역을 돌아보는 사역보고서와 향후 계획서를 내고 ㅅㄱ 위원회 인터뷰를 거쳐 재파송을 받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장기 사역자들에게 번거로운 절차지요. 그러나 사역지로 불러주신 그 부르심이 매 4년마다 점검되고 새롭게 되어 회중들 앞에서 다시 보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겐 큰 축복으로 와닿습니다. 파송교회는 4년마다 1년의 안식년을 가질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장 상황상 저희들은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 달간 모국을 방문하면서 재파송 절차를 밟아 왔습니다.
3주간의 짧은 포항 방문이었음에도 파송교회의 많은 성도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교회 앞에 사역보고를 할 수 있어 현장 상황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직접 증거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모두가 큰 힘과 용기를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안식월로 한국에 들어오면 파송단체에서 주관하는 패밀리캠프에 참여함으로써 본부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공동체 의식을 다지게 됩니다. 4년 전 첫번째 안식월에는 본부 지침에 따라 디브리핑 시간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부산 고신대 영도캠퍼스에서 3박 4일 간의 패밀리캠프에 참여하면서 전 세계에서 온 여러 사역자들과 어려움과 사명을 공유하며 기도로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말 기준, 저희 단체의 한국 지부는 총 181명의 한국인 M을 전세계로 보내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820명의 저희 단체 M이 중앙아시아, 중동 등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안식월을 마치고 이성훈 M이 알마티로 돌아온 날은 7월 31일이었고 8월 5일 주일, 저희가 섬기는 깔까만 ㄱㅎ의 세례식이 캅차가이 호수에서 열렸습니다.
매년 여름 우리는 깝차가이 호수에서 세례식을 가지는데 올해는 분리개척한 새 교회가 맞는 첫 번째 세례식이라 기대가 큽니다. 형제 교회인 자랴치니 교회와 함께 세례식을 가진 이 날, 낡은 버스를 타고 온 교회 성도들이 호숫가에 모였습니다. 세례식 전, 세례 대상자들이 자신들이 회중 앞에서 고백하고자 하는 내용을 되새기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만 사는 삶을 다짐하며 감사드리는 모습입니다.
운전기사 딸린 버스를 빌렸는데 운전기사 두 사람을 식사 자리로 청한 뒤 복음을 소개하는 모습입니다. 사빗한의 전도법은 코란에서 시작합니다. 늘 예수님에 대해 설명하는 코란의 구절에서 출발하지요.
사빗한과 코사인이 세례식을 돕습니다. 이 날 깔까만 교회에서는 마디나, 굴바단, 누르쟌, 아바이 등이, 자랴치니 교회에서 아한, 울발라 등 총 8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중 사진 속 굴바단의 사연을 소개할까 합니다. 우즈베키스탄 카라칼팍 주에서 일자리를 찾아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온 굴바단은 깔까만 교회가 개척된 뒤 예수님을 믿은 새신자 중 한 사람입니다. 카라칼팍에 온 가족이 살고 있지만 그곳 생활이 너무 어려워 돈을 벌기 위해 홀로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 넘어 왔다고 합니다. 굴바단은 우즈벡에서 간호사로 일했던지라 알마티의 한 약국에 딸린 주사실에서 사람들이 갖고 오는 수액이나 영양제를 놔 주는 일을 했습니다. 벌이가 우즈벡보다 좋고 약국 주인의 호의를 얻어 약국 방에서 지낼 수 있었지요. 그러다가 아바이 라는 청년의 소개로 우리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바이는 아직 신앙이 자리잡지 않은 청년인데 어느 날 자신의 신부감이라면서 굴바단을 데리고 교회에 왔습니다. 온 교회는 굴바단을 환영했고 그녀도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진지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굴바단을 데리고 온 아바이는 이후 교회에 나오지 않고 굴바단과의 사이도 나빠졌지만 굴바단만은 교회에 홀로 남아 주일은 물론이고 각종 기도회와 매주 금요일 제자훈련까지 열심을 내었고 마침내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영접하고 세례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굴바단과 조금만 얘기해보면 상냥하고 성실한 자매임을 금새 알아챌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찬양하는 굴바단의 모습을 보면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있음을 느낄 수 있지요. 그래서 굴바단은 늘 우리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는 새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굴바단이 지금은 교회에 없습니다. 지난 9월 말, 우즈베키스탄으로 다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집안 문제로 러시아로 가게 되면서 딸에게 돌아올 것을 간청했고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굴바단 입장에서도 이를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우즈벡으로 돌아가기 전, 굴바단은 교회 앞에 나와 자신의 삶에 생긴 지난 6개월간의 놀라운 변화를 돌아보며 자신이 우즈벡 땅에서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카라칼팍의 고향 마을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없는 강경 무슬림 지역인지라 자기도 어떻게 믿음을 지켜야 할지 막막하다고 얘기하며 하늘 아버지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그녀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굴바단을 위해 일하시고 앞 길을 인도하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깔까만 교회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삼남매 역시 깔까만 교회의 아이들을 담당하는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고 있지요. 매주 아이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그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합니다.
작년 12월 말, 5명으로 시작한 깔까만 교회는 이제 어른만 15명 정도 됩니다. 새 교회 개척 이후, 현지인 성도들은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공동체를 섬기며 신앙이 자라고 있습니다. 굴바단처럼 새로 에수님을 영접하는 현지인들도 한 두명씩 늘고 있지요.
그러나 아직 깔까만 교회에는 담임 사역자가 없습니다. 교인 중에 그럴만큼 준비된 사람이 없는 상태지요. 그래서 지금은 매 주일마다 돌아가며 말씀을 담당하는데 자랴치니 교회의 담임 사역자인 사빗한이 매달 둘째 주, 깔까만 교회의 코사인이 매달 셋째 주, 저희와 함께 사역하는 한국인 선생님이 매달 넷째 주, 그리고 이성훈 M이 매달 첫째 주에 찬양예배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찬양예배는 찬양, 말씀, 기도가 어우려지는 시간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에 준비된 현지 사역자를 세워주시길 기도하면서 온 교회가 함께 자라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지난 9월, 깔까만 교회의 리더 그룹을 처음 세웠습니다. 규칙적으로 6개월 이상 교회에 출석하고 성경공부 5주 과정을 마친 사람에 한해 본인 지원을 받아 1년간 교회 일을 상의하고 결정하는 리더모임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저희같은 외국인 M도 함께 하지만 지체들이 함께 모여 상의하고 기도하면서 공동체를 움직이도록 돕고 있습니다. 매달 두 번째 토요일에 리더모임이 있는데 사진처럼 탁자 위에 각자의 역할이 적힌 종이 팻말이 놓여지지요. '찬양', '새신자 발굴', '기도모임', '구제', '연락', '광고'. 이렇게 함께 섬기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올 가을이 시작되면서 회사 모임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매 3주마다 서로의 집을 방문해 가며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 모임을 가지고 있는데 9월 모임은 알마티에서 130Km 동쪽 S 지역에 정착한 D&S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C국에서 15년간 위구르 사역을 했던 D&S 는 위구르인들이 모여 사는 S 지역에서 평신도 중심 신학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네 아이와 함께 홈스쿨을 하며 S 지역을 섬기는 D&S 가정을 보면서 우리도 많은 격려와 도전을 받습니다.
이성훈 M의 아스타나 UMC 에서의 현지의료인 교육 사역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6-17일 양일간 제 3차 한국-카자흐스탄 임상의학세미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성훈 M이 KOICA의 지원을 받아 UMC 산하 병원에서 세 번째로 개최한 이번 세미나를 위해 한국에서 배재익(경주 굿모닝병원 영상의학과), 손정엽(포항세명기독병원 이비인후과), 송태원(인제대 일산백병원 소아과) 선생님이 카자흐스탄 아스타나까지 오셔서 현지 의료진을 위한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강사진 모두 저희 가정의 후원자이기도 한데 배재익, 손정엽 선생님은 포항선린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분들이고 송태원 선생님은 부산의대기독학생회 후배이자 이선화 M의 동기이기도 합니다.
카자흐스탄 의료진 대부분이 영어를 잘 모르기에 동시대의 의료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미나 강의는 한국어 - 러시아어 통역을 통해 전달되고 강의 PPT 내용을 강의록으로 제작해서 모든 참석자에게 제공함으로써 관심만 있다면 관련 내용을 더 찾아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멀리 가족까지 데리고 와서 카자흐 의료진을 위해 섬겨주신 강사님들, 특별한 ㅅㄱ의 열정을 가진 동역자와 함께 오셔서 현지인과 M를 위해 의료 봉사까지 해 주신 강사님들께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이제 아이들 얘기를 해야겠네요. 초등학교 4학년 첫 파송예배 때 펑펑 울었던 첫째 형민이는 4년전 재파송식 때도 눈물을 보였지만 이번 재파송식에서는 울지 않았습니다. 이젠 고3이니까요. 지난 8년동안 아이들에게 카자흐스탄 알마티는 이제 집이자 고향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고 지금은 9월부터 11월 초까지 이어지는 축구시즌에 푹 빠져 있습니다. 매주 화, 목 축구연습이 있고 알마티 학교 리그와 CASC(중앙아시아 축구리그) 이어집니다.
둘째 시은이는 축구 경기 뛰는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 사진에서 맨 앞이 시은이고 세 번째가 성은입니다. 시은이와 성은이가 참여하는 텐샨학교 고등부 여자축구팀은 이번 가을 알마티 학교 리그에서 우승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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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샨학교에서 마지막 학년을 맞는 형민이의 남자 축구팀은 알마티 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리그 중 형민이에게 큰 사고가 발생했었습니다. 9월 중순 야간경기였는데 형민이는 슛 과정에서 상대방 선수와 충돌하면서 균형을 잃고 넘어진 뒤 머리를 땅에 크게 부딪히면서 뇌진탕을 입고 말았습니다. 3분 정도의 의식 소실이 있었고 그날 밤 축구장에서 있었던 일은 물론이고 그날 밤 일을 지금도 기억 못합니다. 그 날 밤 그라운드에서 일어나 교체된 뒤 경기장 한쪽에 앉아 "아빠, 지금 스코아가 몇 대 몇이에요?" 라는 똑같은 질문을 8번이나 반복하며 "말했어요?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나요" 라고 불안해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이성훈 M의 맘은 참으로 힘들었지요. 다음 날 체크한 CT에서 뇌출혈은 없었지만 가슴 졸이며 형민이의 회복을 간절히 빌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형민이는 이후 순조롭게 회복되어 3주 후 축구 경기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운동 조차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은 한국이나 카자흐스탄이나 매한가지겠지요.
이렇게 우리는 하루 하루 살아갑니다. 개학때 학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성훈 M은 아스타나에 있었기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안식월을 마치고 카작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8년 전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아무것도 모른채 사역지로 떠나던 그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 후 우리 가정을 지켜주었던 수많은 은혜들.... 그리고 이제.... 이렇게 훌적 커 버린 아이들이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어젯밤 가정예배 때 막내 성은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그 찬송 불러요." 이제 9학년이 된 성은이에게도 이 세상이 험한 곳이라는 사실이 실감나나 봅니다. 우린 다같이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또 다른 4년이 참 기대됩니다.
[ 기도 제목 ]
1. 지난 주, 알마티에는 함박눈이 내렸고 이제 겨울로 달려갑니다. 개척한지 10개월이 지난 깔까만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 건강하게 자라도록 기도해 주세요. 모임 장소가 더 안전하고 안정적인 곳으로 옮겨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즈베키스탄 카라칼팍으로 떠난 굴바단에게 뿌려진 믿음의 씨앗이, 싹이 나고 잎이 나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자매가 카라칼팍에서 믿음의 사람과 교회를 만날 수 있도록, 다시 알마티로 돌아와서 믿음생활을 같이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두 손 모읍니다.
2. 이번 의학 세미나팀으로 오신 선생님 중에는 건강이 좋지 않은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더욱 낮아진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사역지의 현지인들을 진료하고 강의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늘아버지께서 그 가정과 자녀에게 기쁨과 치료의 광선을 비추시도록 은혜를 구합니다. 아울러 세미나 강사로 수고하신 선생님들과 강의를 들은 현지인 의료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3. 저희 가정은 이번 안식월과 재파송 과정을 거치면서 2022년까지 카자흐스탄에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내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형민이가 뇌진탕에서 잘 회복되고 이선화 M의 갑상선 기능항진증과 이성훈 M의 갑상선 기능저하증이 잘 조절되고 치유되길 기도합니다.
기도편지는 매 3개월마다 동역자님께 배달됩니다.
동역자님의 기도와 후원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사역합니다.
이성훈, 이선화, 형민, 시은,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