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 보내는 편지 - 2016년 12월 (43호)
2016년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어느 해 보다 많은 변화와 도전의 한 해였고 그저 놀라운 맘으로 하늘 아버지를 바라본 시간들이었지요. 11월부터 아스타나는 많이 추워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답게 11월에도 영하 32-36 도를 연신 기록했지요.
최고 기온이 영하 27도 일 정도로 온도가 낮아 북극이나 진배 없지만 온도보다 더 큰 어려움은 바람, 즉 눈보라 입니다. 초속 20미터의 눈보라 때문에 병원 앞까지 걸어가는 것도 힘들 때가 있지요. 그러나 매서운 추위, 눈보라,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이 도시는 겨울이라야 제 맛입니다.
아스타나에서 이성훈 M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공화국진단센터입니다. 나자르바예프 의대 부속병원인 UMC(University Medical Center) 산하의 4개 병원 중 한 곳입니다. 나자르바예프 의대는 의전원 시스템으로 2년 전에 개교했습니다. 카자흐스탄 의료의 미래를 위한 교육 기관이지요. 미국 피츠버그의대와 협약을 맺고 미국 의대 커리큘럼을 도입해서 카작의 미래 의료를 위한 예비 의료인들을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아직 2학년까지 밖에 없고 내년 9월이 되서야 처음으로 3학년이 생기고 임상실습이 시작됩니다. 이 대학은 카자흐스탄 교육과학부나 보건사회개발부의 지휘로부터 자유롭고 자국 의료법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대통령 직속의 독자적인 의료교육기관입니다.
UMC는 나자르바예프 의대 졸업생들의 수련 병원 역할과 의료선진국으로부터 첨단의료기술을 도입하는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는데 이성훈 M은 바로 이 UMC 공화국진단센터를 중심으로 UMC 의료진의 역량강화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전문 진단이 필요한 내과계 질환은 물론이고 일부 외과 수술들이 자국 내에서 시행되기 어렵기에 해당 일부 환자를 해외로 보내 치료하고 있습니다. 자국민의 건강과 진료권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에 정부 예산을 들여 해외로 보내는 것이죠.
사진에서 보시는대로 알마티 도로변에는 독일, 이스라엘, 한국으로 암을 치료하러 가자는 광고판이 여기 저기에 걸려 있습니다. 이렇게 민간 해외의료 알선업자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지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카자흐스탄 의료계는 한국의 선진의료 기술과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UMC에서는 한국 의료진을 초청해 건강검진 기술을 배우는 멘토쉽 프로그램을 개최했는데 한국 의료진을 섭외하고 초청하고 강의와 현장 실사를 통해 컨설팅하는 전 과정을 제가 직접 준비하고 진행했습니다. 7명으로 구성된 한국 단기팀을 초청해서 결과 보고서 작성하기까지 필요한 모든 경비는 모두 UMC 에서 부담했습니다. UMC 자체 예산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적극 개입하면서 저와 UMC와의 관계는 더욱 가까와졌고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내년에도 카자흐스탄 현지의료진을 돕는 일을 계속 기획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나자르바예프 의대학생들의 임상실습과 인턴 과정에도 개입해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런 의료 활동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성훈 M을 아스타나로 보내신 또 다른 이유도 조금씩 발견해 가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이지요.
이 사진은 13년 전, 2003년에 KOICA 국제협력의사를 마치고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당시 아스타나 공항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에서 키 큰 남자 학생인 세르게이와 쌍둥이 자매인 까밀라, 자미라의 모습이 보이고 어린 형민이와 시은이도 보입니다. 한국으로 떠나는 저희 가정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공항에 나온 세르게이, 까밀라, 자미라는 아스타나 장로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우리와 함께 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왔던 세르게이, 양산 아파트 앞에서 형민, 시은이와 함께)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맺은 이 학생들과의 특별한 인연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귀국 다음 해인 2004년 우리는 세르게이를 한국으로 초청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세르게이는 양산 우리집에서 1개월간 머물며 한국 교회 모습을 보며 새벽기도, 구역예배, 학생예배에 참석했고 교회 회중 앞에서 간증도 하고 학생수련회도 참여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친밀하게 경험했습니다. 한국 방문 기간동안 많은 성도들이 타국에서 온 세르게이를 아끼며 기도해 주셨지요. 그러나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세르게이를 만날 기회는 없었습니다. 7년 전 결혼을 앞두고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지만 간간히 오던 전화나 메일도 6년전부터 끊겼습니다.
12년동안 못 만났던 바로 그 세르게이를 아스타나에서 활동하면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흰 눈이 내리던 어느 오후, 이제 흰 머리도 나고 예쁜 딸 사진을 자랑하는 아빠로 변한 세르게이를 처음 봤을 땐 가슴 한 켠이 뭉클해졌습니다. 세르게이는 그 옛날 배웠던 한국어를 토대로 지금은 한국건축회사 아스타나 지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작년까지 아스타나의 한 교회를 출석했지만 담임 목사님(현지인)이 종교국에 의해 잡혀 가고 교회가 폐쇄되는 바람에 성도는 모두 흩어지고 교회 자체가 없었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교회를 출석하지 않고 있는 걸 보며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세르게이는 오랫동안 한국 ㅅㄱ 사님의 설교 통역을 맡기도 했었지요. 특유의 미소와 옛 마음을 잃지 않고 있는 세르게이를 보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세르게이가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ㅅㄱ사님은 이제 카자흐스탄에 없지만 웬지 우리가 세르게이를 챙겨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의 영혼을 위해서...
(2003년 아스타나 장로교회 모임 장소인 미술관에서, 까밀라, 자미라, 형민이가 보입니다.)
쌍둥이 자매도 마찬가지 입니다. 까밀라와 자미라는 세르게이가 한국을 다녀간 2년 뒤, 2006년에 포항 우리집으로 1개월간 초청했습니다. 당시 포항충진교회에서 간증을 하기도 하고 아스타나 장로교회 선교보고를 위해 대전지역 교회들을 방문하기도 했었지요. 부산의대기독학생회 하기봉사에도 함께 가고 한국의 유적지도 많이 다녔지요. 세르게이 때보다 더 많이 기도와 찬양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 때도 까밀라, 자미라는 고등학생이었고 형민, 시은, 성은이는 사진에 보이는대로 무척 작았습니다. 이후 두 자매는 뛰어난 한국어 실력 덕분에 한국 건축회사와 설계회사 통역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두 자매와의 연락도 끊기게 됩니다. 우리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까요. 2011년 우리 가족이 알마티로 다시 들어왔을 때 우연히 자미라와 연락이 되어 함께 저녁을 나누기도 했지만 한국와 카작의 여러 도시를 오가는 업무 때문에 자미라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까밀라와 자미라를 다시 아스타나에서 만났습니다. 자미라는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서 아들을 기르고 있고 까밀라는 한국대사관 통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까밀라가 대사관에 통역으로 취업하게 된 것이 이성훈 M이 아스타나에 올라온 바로 그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대사관에서 우연히 까밀라를 만난 날, 까밀라는 사무실 안에 있다가 밖에서 이성훈 M 목소리가 나는 걸 듣고 밖으로 나와봤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지요. 이렇게 드라마처럼 까밀라와 자미라를 다시 아스타나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추운 아스타나의 한 식당에서 우리 가족과 자미라 가족, 까밀라가 함께 만나 즐거운 모임을 가졌습니다. 자미라는 우리와 남편을 보며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자매가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14살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저는 31살이에요. 선생님이 제 나이 때 처음 카자흐스탄에 오셨잖아요. 이렇게 만난 게 너무 신기해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글학교에 나오게 되고, 예수를 영접하며 함께 찬양하고 성탄절과 부활절을 준비하고, 한국에 와서 함께 교회를 돌며 간증하면서 카자흐스탄과 아스타나 장로교회를 위해 기도를 요청했던 그 시간들...그리고 서로 잊혀진 시간들... 그러나 이제 이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하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늘 이렇게 극적입니다.
자미라와 까밀라 역시 지금은 교회를 출석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스타나에는 등록 교회를 찾기 어렵고 카작인들이 접근하기도 어렵습니다. 만일 우리 가족이 언젠가 다시 아스타나로 옮겨간다면 세르게이, 자미라 가정, 까밀라를 중심으로 모임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의료사역을 위해 아스타나에 올라왔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하늘아버지께서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을 시작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했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그 분께 완전히 넘겨드립니다.
그리고 여기 우리 가정이 만 5년동안 함께 동역자로 섬기고 있는 알마티의 카작인 교회가 있습니다. 아직 미등록 지하교회이지만 성도 수는 50명이 넘어가는 큰 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외국인 ㅅㄱ사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 중심의 복음전파의 운동성을 잃지 않는 카작인 교회를 시작하자고 7년전 시작된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 뜻대로 이 교회는 무척 빨리 성장했고 조직보다는 활발한 운동성이 큰 특징입니다. 올 연말을 맞으면서 내년에는 교회 예산을 세우고 조직도 갖추려고 했으나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교회 개척 모델이 있지만 저마다 장단점이 뚜렷한데 우리는 샹으락 교회가 가진 장점을 살려가며 단점들을 수정해 나가길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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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주일 모습입니다. 화려한 성탄트리와 장식은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한 마음으로 찬양하고 기뻐했던 성탄주일, 최근 청년모임이 힘을 내고 있어 찬양팀에도 큰 에너지를 주고 내년을 더 희망적으로 보게 합니다. 이선화 M은 올해 내내 손가락 통증이 있어 피아노 반주가 쉽지 않았지만 청년들과 함께 찬양 연습을 하며 늘 힘을 냅니다.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많이 찬양반주를 하고 싶다' 고 얘기하지요. 우리 육신은 쇠약해지고 낡아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알마티에는 지난 11월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지붕 위에는 엄청난 두께로 눈이 쌓이는데 이게 얼게 되면 엄청난 무게가 되고 마침내 가옥 지붕을 무너지게 합니다. 주중 모임 장소로 사용하는 교회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우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입니다. 교회 지붕 무너지는 것을 걱정해 평일에 교회에 나와 지붕의 눈을 치우는 모습....한국에선 보기 어렵지요.
지난 11, 12월에도 교회 리더모임이 매달 열렸습니다. 현지인과 외국인이 파트너가 되어 교회 공동체의 현안을 나누고 기도하는 모임이지요. 현지인 주도의 교회 안에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예배팀을 이끌고 함께 예배하고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고 기도회에서 삶을 나누고 마당 잡초를 뽑고 세례식을 위해 야외로 나가고 모임 장소 청소를 하며 교회 재정을 의논하고 미래 계획을 세우고 신학교를 논의하고 병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우리 가정이 하는 일입니다.
알마티의 샹으락 교회 외에도 텐샨학교도 우리 가정의 사역지입니다. 세 아이가 다니고 있는 MK학교인 텐샨학교는 유치원부터 고 3까지 모두 150명의 학생들이 있고(이 중 80%가 ㅅㄱ사 자녀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교육 M들이 이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선화 M은 2013년부터 주 3-4일 학교에 나가고 있고 이성훈 M은 2015년부터 텐샨학교 이사로 학교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3개월에 한 번씩 하루종일 이사회가 있고 10월에는 2일간의 리트릿이 있지요. 텐샨학교는 최전방 ㅅㄱ의 남은 과업을 위해 MK 학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사역자들이 카자흐스탄은 물론 중앙아시아에 복음을 들고 나갈 수 있도록 돕는 미션을 수행할 것입니다. 사진은 이사회 모습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 가정이 회사에서 맡은 역할도 있습니다. 우리 단체는 카자흐스탄 내 도시 아스타나, 알마티, 쉼켄트에서 9 Unit 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팀 리더가 1년 이상 안식년으로 떠나 있기에 사실상 우리 가정에게 멤버케어 측면에서 알마티 필드를 섬기는 역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새로 온 브라질 가정과 싱가폴과 스위스에서 온 단기 자매를 돕는 역할까지 맡게 되면서 필드에서 주어진 임무가 점점 늘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자연스러운 역할이 되고 있지요.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호주, 독일, 스위스, 싱가폴, 한국 등 전 세계에서 이 땅을 섬기기 위해 온 사역자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하며 각자의 부르심을 새롭게 하며 하나되는 것도 해외 사역자로서의 큰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2016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과 변화로 시작된 2016년은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이심을 확인시킨 한 해였습니다. 우리가 위의 것을 바라볼 때 세상의 염려와 근심은 한낱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우리가 그 분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세우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된 한 해였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그 분과 함께 하는 2017년은 새로운 은혜와 도전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올 한 해를 보내면서 2010년 파송 이후 부족한 저희 가정을 늘 인내와 사랑으로 도우시고 기도해주시는 동역자님과 가정 위에 동일한 복과 은혜가 넘치길 축복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기도 제목 ]
1. 올 한 해 알마티 샹으락교회, 텐샨학교, **서브, 아스타나 UMC공화국진단센터 등 다양한 사역 영역에서 변화가 있었지만 우리 맘에는 감사와 기쁨 뿐입니다. 이제 삼남매(형민,시은,성은)도 각각 10학년, 8학년, 7학년으로 자라 우리를 돕고 있지요. 오는 2017년에도 이성훈 M은 주 중에 아스타나를 오가겠지만 온 가족이 건강하게 한 맘으로 카자흐스탄 땅을 겸손한 종의 맘으로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2. 카작 민족교회 안에서 하늘 아버지께서 직접 이끌어가시는 역동성을 늘 경험합니다.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직접 몸된 교회를 일으키시고 성장시키는 아버지의 손길을 봅니다. 리더인 루스템이 세상 염려를 내려 놓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역할 수 있도록, 자라치니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한 사빗 한이 믿음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복음 전도자로 서 있도록, 매주 교회를 찾아 영접기도를 드리는 카작인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온전히 예배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동역자님의 기도와 후원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사역합니다.
이성훈, 이선화, 형민, 시은,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