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 보내는 편지 - 2016년 4월 (39호)
주 안에서 한 소망을 품고 사는 믿음의 동역자님께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평안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시끄러워진 새 소리로 잠이 깨고 강한 햇살이 느껴져 눈이 부신 계절, 카작 초원에도 새 봄이 찾아 왔습니다. 쑥, 달래, 두릅, 목련, 철쭉 같은 고향의 봄은 없지만 사과꽃,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고향의 벚꽃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도편지는 새 봄과 함께 우리 가정에 찾아온 변화들로 인해 조금 늦어졌습니다.
집 근처 도로의 모습입니다. 이제 흰 눈은 산 위로 올라가 버렸고 도로 위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려 앉았습니다. 이미 지난 기도편지에서 나누었듯이 올 봄부터 우리 가족의 사역 패턴이 조금 바뀌게 되었습니다. 카작 교회 사역이나 학교에는 변화가 없지만 이성훈 M 이 주 중에 의료 사역을 위해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로 올라가게 된 것이죠.
아스타나는 알마티로부터 북쪽으로 약 1,200 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보통 비행기로 1시간 40분 거리라고 말합니다. 예전에 구 소련 열차로 다닐 때는 26시간, 21시간이었지만 2002년에 도입된 스페인제 급행열차를 타면 약 12시간이면 아스타나-알마티 구간을 주파할 수 있습니다. 아빠의 새로운 사역 장소를 답사하기 위해 온 가족이 3월 초에 아스타나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3월 초라고 하지만 아스타나는 엄청 추웠습니다. 온도야 영하 10도 정도 밖에 안되지만 바람이 어찌나 강하든지... 바깥에서 한 20분만 걸어도 정신이 혼미해졌지요. 우리 뒤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이성훈 M이 4월부터 근무하는 카자흐스탄 공화국 진단센터입니다. 아스타나는 온 가족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살았더 곳입니다. 이 시절에 둘째 시은이가 태어나기도 했고 첫째 형민이가 첫돌, 두돌, 세돌까지 보낸 곳이죠. 성은이는 뱃속에 있었고...
아스타나 시절에 섬겼던 아스타나 장로교회가 있던 미술관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15년 전에는 이 미술관의 홀을 빌려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지만 이제는 인형극장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잠시 안에 들어가 보았는데 구조는 옛날 모습이지만 이전 모습은 우리 마음 속에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먼 옛날 얘기에 고개를 끄덕거리지만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알 순 없겠지요. 그래도 그 때의 경험들이 우리를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오게 만들었습니다.
이성훈 M은 4월 4일부터 아스타나에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나자르바예프 대학에 속한 카자흐스탄 최고 의료 기관인 University Medical Center(UMC) 에 속한 Republican Diagnostic Center(공화국 진단센터) 가 주요 활동 기관이지만 진단센터에 얽매이지 않고 UMC 산하의 모자병원, 심혈관센터, 소아재활병원, 신경외과병원 등에서도 활동하게 됩니다. 일차적인 업무는 카자흐스탄 의료진의 자질 향상을 위해 한국과 카자흐스탄 사이의 협력 방안들을 찾아내고 실현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현지 의료진을 일일이 만나 그들의 상황과 필요를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으로부터 제공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지원들을 고안하게 됩니다.
현지 의료진을 만나 관계를 맺고 함께 하나될 수 있다는 것이 사역자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기적인 동기나 자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순전히 카작 의료진을 위해 존재하고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이 인정하고 받아주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합니다. 그들 옆에 서서 그들의 편이 되고 그들의 눈 높이에 맞춰 이 땅에 의료를 통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섬기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공화국 진단센터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병원 구석 구석을 익히는 것이 우선입니다. 가능한 모든 의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며 진단센터는 물론 카자흐스탄 의료 시스템 전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예정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찾으려고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사람간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기에 진정성을 가지고 이곳 의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제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현지인 진료도 하게 되지만 이것 역시 큰 틀에서는 이곳 의료진 계발에 초점이 맞춰질 것입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다보니 현지 기관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듯한 눈치입니다. 한국인 의사가 이곳에서 뭘 할 수 있을지... 그런 면에선 지난 시간 동안 알마티에서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활동했던 것들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가려고 합니다.
아스타나는 카자흐스탄의 수도이다 보니 사립병원이나 의료관광 보다는 카자흐스탄 의료정책을 결정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사진은 카자흐스탄 정부청사의 모습이고 이 나라의 보건복지부도 이 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아스타나에서 거주할 아파트 계약을 마쳤습니다. 앞으로 창의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샹으락 교회는 2016년을 시작하면서 두 달간의 릴레이 금식 기도를 선포했습니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장소에 가서 기도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감사하게도 40일간 하루도 끊어지지 않고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한 해라 기대가 컸지만 교회를 향한 사단의 방해 공작은 끊어지질 않았습니다. 특히 지난 달 우리 공동체 안에는 여러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 만나 새 생명의 기쁨을 맛본 몇몇 새신자들이 과거 삶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했고(많은 부분은 술입니다) 경제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주일에도 일하는 직장으로 옮겨간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3월말에 있었던 카작인들의 최대 명절인 '나우르즈'(카작인들의 새해)를 보낸 뒤에는 신앙생활에 힘을 잃은 지체들이 여럿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명절을 보내기 위해 과도한 지출을 한 것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졌고 명절 분위기에 오래 젖어 있는 탓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영, 육으로 지친 시기에 교회 여성 기도 그룹이 함께 모여 1일 수련회를 열었습니다. 알마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라치니 지역 여성 두 사람도 참여하는 등 생각보다 호응이 좋았습니다.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영적 갈망이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임 시간동안 서로의 마음을 여는 게임도 하고 말씀도 듣고 맛있는 식사도 하면서 참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각자의 삶 속에 놓인 어려움들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나누고 기도하면 어느새 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일어설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고백은 결국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은혜는 날마다 새로우며 그 분 안에서 누리는 평안함은 세상이 주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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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기도하는 여성,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 계속 훈련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한국에서도 최근 총선이 있었지만 카자흐스탄도 지난 3월 21일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현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당인 '누르 오탄(조국의 빛)' 당이 82.15%를 득표하며 압승을 거뒀습니다. 그 뒤를 이어 제 2당이 된 '악 졸(밝은 길)' 당 역시 친여 야당인 것을 고려할 때(7.18% 획득) 앞으로도 의회는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소련 붕괴 전인 지난 1989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 1서기를 맡아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1990년에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뒤 지금까지 26년째 권좌를 지켜오고 있는 나자르바예프 현 대통령은 지난 해 대선에서도 98%의 지지를 얻어 오는 2020년까지 대통령 임기를 확정한 바 있습니다. 1940년 생인 대통령은 올해로 만 76세가 되기에 대통령의 건강 상태나 유고시의 위기 상황이 여전히 카자흐스탄 최고의 불안요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봄이 되어 지붕위에 쌓인 눈들이 녹고 비가 내리면서 월세로 살고 있는 우리집 곳곳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집 주인에게 알리고 기술자에게 연락해서 설명하고 부품 사오고 기다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국이라면 아무 것도 아닌 이런 소소한 일들이 외국인으로 타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해결되지 않는 장기 미제로 남을 때가 많지요. 1달이 지난 지금도 이 상황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겠다는 기술자는 아직도 오지 않고 있으니까요. 카자흐스탄에서 산지 8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참고 견뎌야 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MK학교인 텐샨학교에서는 청소년기를 보내는 학생들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특별한 행사들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침묵 수련회(Solitude Retreat)입니다. 이 수련회는 9학년(고등학생)부터 참석할 수 있는데 첫째 형민이는 올해 처음으로 이 수련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형민이는 컴퓨터나 휴대폰은 물론 책도 대화도 허락되지 않는 2박 3일의 수련회가 그저 따분할 거라고 예상했나 봅니다.(아마 학교의 선배들이 그렇게 얘기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형민이에게 어떻게 기대감을 심어줄 지 생각해 보았지만 조언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수련회 일주일 전부터 매일 가정예배 시간마다 이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라서 기대할 수 없는 우리 심령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대하는 마음을 심어 달라고...
2박 3일의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온 형민이의 표정은 아주 밝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간 상기된 모습으로 둘쨋 날 산행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거침없이 털어놓았습니다. 둘째 날 오전, 조용히 개인묵상하도록 시간이 주어졌을 때, 형민이와 몇몇 남자아이들은 숙소 뒷편 산을 올랐다고 합니다. 이곳 산은 1년 내내 만년설로 덮인 높은 산들이 첩첩히 산맥을 이루며 이어지기에 가까워 보여도 실제로는 아주 높고 험한 산들입니다. 산을 오르다가 힘들어서 되돌아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몇몇 아이들은 눈을 만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6시간 동안 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정상이라고 생각한 그 지점에서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시고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눈 앞에 펼쳐진 풍광과 등 뒤로 끝없이 솟아 있는 작은 산맥들 사이에서 각자 경험하며 느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 같습니다. 새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도 거대한 산에 휩싸여 압도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크심이 가슴 한가운데로 크게 울렸나 봅니다. 사진기나 휴대폰을 소지할 수 없기에 맨 몸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아쉬웠는지 형민이는 그 자리에서 간단한 스케치를 남겼습니다.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하나님과의 이런 특별한 만남을 가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도전과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성훈 M 이 아스타나에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렇습니다. 가족들은 주 중에 아빠 없이도 해오던 일들을 계속 해 나가야 합니다. 늘 찾아오는 파도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이곳 사람들과 교회를 잘 섬기는 것, 그것이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그러기에 날마다 새 영을 부어주시고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그 분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도 믿음으로만 살게 기도합니다.
[ 기도 제목 ]
1. 이성훈 M 이 아스타나에서 시작한 일은 하나님께서 여시고 만드신 기회라고 믿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카자흐스탄 보건부 차관, UMC 이사장 등 많은 병원 관계자들을 연이어 만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의 의료 공급자들의 수준을 어떻게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협력 방안을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향후 많은 현지인 의사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필요를 들으며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이 일을 통해 카자흐스탄 의료 정책 입안자들과 깊은 신뢰와 인간 관계가 쌓이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이를 돕고 있는 대사관 관계자에게도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2. 샹으락 교회에는 매주 새로운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주님께 나아오고 있습니다. 한 번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이 말씀과 간증을 들으며 계속 찾아오다가 몇 주 후 회중 앞에 서서 영접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 가슴에는 벅찬 감격과 기쁨이 넘칩니다. 이 카작 초원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이 세상을 이길 능력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올해에도 더 많은 카작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와 이 땅에 복음의 계절이 꽃 피울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3. 주 중에 이성훈 M 이 아스타나에서 활동함으로 인해 알마티에 남은 가족들의 활동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남은 가족들의 안전도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주야로 졸지 않으시고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합니다. 아이들 역시 자라면서 더욱 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올 여름에는 한국에서 열리는 MK 수련회에 삼남매를 보낼까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는데 하늘 아버지께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동역자님의 기도와 후원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사역합니다.
이성훈, 이선화, 형민, 시은, 성은 드림
* 보안상 본 내용을 인터넷(게시판)에 올리지 말아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