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 보내는 편지 - 2015년 12월 (37호)
계절은 또 한 골목을 돌아 겨울이 되었습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며 11월까지 비교적 따뜻했던 기온은 지난 주부터 뚝 떨어져 영하 12도를 오르내리고 있고 사람들은 앞으로 다가올 한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 땅에 계시는 귀한 동역자님 가정과 삶 속에 하늘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이 끓어 넘치는 올 겨울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올해는 이곳 알마티도 따뜻한 겨울 때문인지 유달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호흡기 감염으로 고생했고 폐렴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되었습니다. 2주 전부터 간간히 기침을 하던 우리 집 막내 성은(6학년)이도 열이 조금씩 있는지라 일찌감치 항생제를 먹이고 있었는데 지난 주 월요일부터 고열이 발생하고 호전이 없어 다음 날 흉부 X선 촬영을 하였는데 아래와 같이 좌측 폐야에 폐렴 음영이 확인되었습니다. X선 찍기 전까지 오그멘틴(augmentin) 성분의 현지 항생제를 계속 복용하고 있었기에 약간은 충격적인 결과였습니다.
|
|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현지 소아과 선생님과 상의해서 지난 화요일부터 집에서 항생제인 ceftriaxone 1.0g을 1일 1회 근육주사하기 시작했는데 고열이 떨어지긴 했지만 주사 3-4일째가 되어도 여전히 미열과 두통이 지속되고 좀처럼 낫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쇠약감과 두통, 발열에 시달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딸의 상태를 보는 부모의 맘은 더 불안해져 갔지요. 교과서를 뒤져보니 항생제 내성균주가 의심되고 항생제 용량을 늘려 정맥주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금요일부터는 용량을 2.0g 으로 늘려 정맥주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부족했던 2%가 채워지면서 조금씩 호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소화기내과가 주 전공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내과의사인데 딸의 폐렴도 제대로 가이드라인에 맞춰 정맥주사를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아무리 항생제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치료는 아버지께서 하신다는 당연한 진리를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3일간 항생제 정맥 주사를 맞았던 성은이는 아직 기침을 계속하지만 1주 이상 학교를 결석했기에 어제부터 등교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추운 겨울, 아직 캄캄한 아침 6시에 일어나 언니, 오빠와 함께 차를 타고 멀리 학교까지 통학하는데 따른 체력 부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번 기도편지는 성은이가 폐렴에서 잘 회복될 수 있도록 긴급기도 부탁드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지난 10월 18일, 샹으락 교회는 교회 창립기념예배 및 추수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한국에서는 추수감사예배를 보통 11월 세째 주에 드리지만 카작 민족은 농경민족이 아닌 유목민족이기에 추석 같은 명절이 없고 우리 교회의 경우는 교회 창립일에 맞춰 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는 찬양팀이 인도하는 찬양으로 시작하는데 찬양이 마치면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보낸 뒤, 말씀을 듣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말씀 후에는 누구나 나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간증 시간, 병자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의 얘기를 함께 듣고 기도하는 시간, 새로 나온 사람을 환영하고 기도제목을 청해 듣고 기도하는 시간, 특송, 헌금을 위한 기도, 광고 등의 순서로 진행합니다. 대략의 정해진 틀이 있긴 하지만 매 주일마다 다양한 간증과 새로운 사연이 전개되기에 어떤 흐름과 분위기가 될지 예측할 수 없고 마치는 시간도 정해지지 않은, 그야말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대로 이끄심을 받지요.
2009년 10월, 외국인 1가정과 현지인 2가정이 모여 시작한 이 예배 공동체는 어느덧 만 6년이 되었고 우리 가족이 이 예배 공동체에 합류한지도 어느새 만 4년이 흘렀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저희 가정 이후로 교회에 온 사람들인지라 이들이 어떻게 영접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믿음이 자라가고 있는지... 바로 우리가 이 일의 증인입니다. 사실 복음을 듣고 눈물로 뜨겁게 반응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사회 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고 가족 내에 문제가 많으며 고정적인 일자리도 없어 세상적으로 아무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 들려진 천국 복음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영접한다고 고백한 뒤 복음에 맞게 생활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세상으로 나가 이전 삶을 되풀이하고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는 패턴을 반복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이 이들을 완전히 변화시킬 만한 충분한 능력이 없는 것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교회 성도들이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문제, 복음 앞에서 정말 하나님만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못하는 문제를 이곳 1세대 카자흐 민족 교회 안에서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과 함께 예배 공동체로 묶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성도의 삶을 나누면서, 성령 안에서 이들과 함께 삼겹줄로 함께 묶여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곳 카자흐 1세대 교회 안에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날 간증 시간에는 자랴치니에서 온 한 사람이 앞에 나섰습니다. 사진에서 왼쪽부터 사빗한, 루스템 옆에 서 있는 분입니다. 그는 가정을 내팽개치고 술에만 의존해 살아온 알콜 중독자였기에 대낮에도 정신을 잃고 길에 쓰러지는 일을 반복하는 희망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 전 사빗한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었지만 그냥 한 쪽 귀로 흘러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던 중 인근을 떠돌던 들개에게 팔이 물렸는데 너무 취한 상태인지라 그냥 길에 쓰러져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팔이 퉁퉁 부어오르고 고름이 차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찾아간 병원에서 들은 얘기는 이미 괴저상태가 심하니 생명을 건지려면 팔을 절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절망 속에 있던 그의 맘 속에 떠오른 생각은, 복음을 전해주던 사빗한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3일 밤낮을 걸어 사빗한 집에까지 찾아 갔습니다. (계속 술을 마시고 길에 쓰러져 자는 바람에 3일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사빗한은 술에 취한 채 팔이 썩어들어가는 그를 맞아 바로 병원에 데려간 것이 아니라 그냥 하룻밤을 재웠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난 뒤에도 "하나님께서 너를 반드시 치료하실 것이다". 라고 얘기하며 기도만 할 뿐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이틀 뒤, 기적같이 썩어들어가던 팔에서 고름이 빠져 나오며 괴저상태에 있던 팔이 아물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3일 후 찾아간 병원에서 팔이 치유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온 교회 앞에서 큰 목소리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기적을 전해들은 온 회중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 기도를 올린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샹으락 교회는 이렇게 매주 간증이 넘쳐나고 새로 믿는 자의 수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부터 몇몇 젊은 청년들이 찬양팀 싱어로 나서면서 찬양팀은 더욱 힘을 얻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첫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고 예배 찬양은 계속 힘있고 은혜가 넘칩니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전체 찬양을 리더할 수 있는 현지인 찬양인도자가 세워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외국인이 이끌어가고 있지만 현지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준비되는 찬양 시간을 그려봅니다. 이선화 M 과 저는 '아르만' 이라는 젊은 남자 성도를 맘에 품고 있습니다. 작년에 그에게 이 일을 제안했을 때 아직은 준비되지 않았다며 고사했는데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습관과 죄악으로 인해 자존감이 많이 낮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 교회는 그에게 찬양의 달란트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다려주면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일어섰다가 쓰러지기를 반복하지만 그가 큰 믿음으로 무장되어 이 영적 싸움을 이끌어갈 용사가 되어 주길 믿음으로 그려봅니다.
지난 10월 한국에서 있었던 의료 ㅅㄱ대회, 의료 ㅅㄱ ㅅ 대회를 참석하고 돌아온 후, 이성훈 M은 알마티 시내의 "healthcity' 라는 의료기관으로 자리를 옮겨 한 달간 진료를 했습니다. 이전에 진료실을 개설했던 '도스타르메드'도 나쁘지 않았지만 Helathcity의 제안이 워낙 파격적이었습니다. 현지 의사들의 멘토링을 담당하는 의료 자문관 역할과 병원 검진 프로그램이 주업무였기에 현지인 의사와 환자를 더 만날 수 있는 잇점에다가 외국인 의사인 이성훈 M에게 급여까지 주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일한 '도스타르메드'에서는 급여를 받은 것이 아니라, 개인 진료실을 병원 안에 열어야 하기에 오히려 장소 사용료를 지급해야 했었는데... 이것은 여러모로 솔깃한 내용이었습니다. 장기적으로 사역을 위한 재정 자립도 이룰 수 있고 이 제안이 현실화된다면 더 많은 의료 사역자를 이곳으로 동원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1달 후 약속한 급여는 나오지 않았고 그 곳에서의 진료는 곧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카자흐스탄 경제가 텡게 평가절하로 너무 힘든 시기라 급여를 줄만큼 병원 경영이 어렵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여러가지를 볼 때 아직 외국인 의사를 고용할 여건도 형편도 안되며 경영자를 신뢰하기도 힘든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Helathcity는 그만두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비슷한 시기에 제안받은 또 다른 옵션이 더욱 유력해지는 결론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스타나에 있는 공화국 진단센터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제안은 지난 가을에 받은 것인데, 카자흐스탄 최고 국립의료기관인 National Medical Holding 산하 공화국 진단센터(Respublican Diangnostic Center)로부터 카자흐스탄 소화기내시경 분야의 발전을 위해 새해부터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입니다.
2010년에 파송받아 알마티에 들어온 뒤 지난 4년 반동안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따라 알마티 현지의 다양한 사립의료기관에서 일해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던 차에 주재국 국립의료기관에서 이같은 제안을 받게 되자 이 옵션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약간의 혼란이 있기도 했지만 Helathcity 건이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으니 이 프로젝트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 같습니다. 아스타나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 과제가 있는데 이를 위한 행정 작업은 이미 진행중이며 오는 12월 말 경에 최종 결정이 날 것 같습니다. 최종 결정이 난다면 하늘 아버지께서 열어주신 새로운 길임이 분명하기에 감사하는 맘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생각입니다.
아스타나의 모습입니다. 현대 도시와 모스크가 공존하는 카자흐스탄의 수도입니다. 2010년 파송 이후 한결같이 안개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늘 하늘 아버지의 인도하심만을 의지한 채 따라온 시간들입니다. 파송받을 때는 알마티 동산병원이 궁극적인 사역지라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과정이었을 뿐 영주권 작업, 도스타르메드, Helalthcity를 거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공화국진단센터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걸음이 더욱 기대되고 조심스럽습니다.
텐샨학교 소속인 시은(7학년), 형민(9학년)이는 가을 내내 알마티 학교 축구 리그와 CASC(중앙아시아 학교 축구 리그) 로 즐거운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시은이는 여학생이지만 축구가 아주 맘에 드나 봅니다.
|
|
성은이가 폐렴으로 이렇게 몸져 누운 걸 보면, 시은이와 형민이가 튼튼하게 겨울을 넘어가고 있는게 운동 덕분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ㅅㄱ ㅅ 자녀(MK) 라는 것이 자신의 선택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기에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하늘 아버지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기도하게 되지만 한편으론 아이들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접근합니다. 아이들이 놓여 있는 중 3, 중 1 시기가 다들 힘든 때라고 하는데 이 어려움 중에도 잘 참아주고 이해해 주는 아이들이 늘 고맙습니다. 이선화 M 도 학교 일을 병행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주변 현지인들의 필요와 쓸 것을 늘 챙기며 샹으락 교회의 여성 모임을 통해 교회 공동체 안의 엄마들의 삶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올 겨울도 부부가 함께 힘을 합쳐 240Kg 의 김장을 담았는데 내년 봄까지는 충분히 김치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가 갈수록 우리 가정을 걱정하며 기도와 물질로 섬겨주시는 동역자님들의 열심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공급'임을 실감하게 되는 것도 물론입니다. 늘 감사드려요.
[ 기도 제목 ]
1. 다시 막내 성은이의 폐렴 얘기로 돌아갑니다. 열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기침은 계속하고 오랜 기간 집에서 근육주사, 정맥주사를 맞느라 전체적으로 쇠약해진 상태입니다. 알마티는 여전히 영하 10도 이하로 추운데 학교 생활 중에 다른 바이러스의 중복 감염 없이 잘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다행히 오는 12월 16일(수)은 카자흐스탄 공화국 독립 기념일이라서 학교를 쉽니다. 이 기간을 지나며 면역력도 회복되고 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2. 샹으락 교회는 가을을 지나며 많은 성도들이 더해졌습니다. 최근 3개월 사이만 해도 아바이, 우므르 벡, 무슬림 등 여러모로 기대가 되는 젊은 청년들이 대거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회개하고 영접 기도를 하게 되면 금요일 기도회, 토요일 리더교육, 주일 새신자 공부 등을 통해 믿음의 도를 조금씩 깨우치게 됩니다.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이 이들의 삶 속에서 능력을 나타내도록 기도해 주세요. 성품도 좋아서 앞으로 현지 교회에 훌륭한 리더가 될 재목들로 보입니다. 올 겨울을 지나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안에 깊이 뿌리 내리도록 기도해 주세요.
3. 아스타나 공화국 진단센터에서 근무하는 문제를 두고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 가정은 기도하며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가능해지면서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최종 결정이 12월 말에 내려지는데 현지 기관과 준비하는 사람들의 손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뤄지도록 기도합니다.
동역자님의 기도와 후원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사역합니다.
이성훈, 이선화, 형민, 시은,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