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 보내는 편지 - 2014년 6월 (29호), 안식월을 앞두고.

이제 며칠 후면 저희 가정은 이곳 알마티를 떠나 한국으로 일시귀국하게 됩니다. 이 땅에 온지 만 3년, 첫 번째 안식월을 맞아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우리를 향한 부르심을 되새기기 위해 고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몸담고 있는 단체(IS)의 경우 3년 사역에 6개월이라는 안식월 기준을 제시하지만 알마티 현지 클리닉을 오래 비우기 어렵고 아이들 상황도 고려해서 이번에는 한국에서 2개월 정도만 머물다 돌아올 예정입니다.

병원 이야기

2011년 8월, 우리가 처음 알마티에 들어왔을 때는 장기 비자를 받지 못하고 고작 1개월짜리 방문 비자만 가지고 들어와야 했습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알마티에 있는 의료기관에서 일할 계획으로 들어왔지만 정작 이곳에 오고 나서야 현지에서 한국 의사가 합법적으로 진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비자를 연장해가며 비공식적으로 환자를 보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외롭게 걸어야 했지요. 그러나 마침내, 입국 1년 반 만인 지난 2013년 3월, 현지 의료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합법적인 노동 허가를 받았고 같은 해 6월, 정상적인 노동 비자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힘들 거라 얘기했던 법적 절차들이 속속 해결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이 왜 우리 가정을 이곳에 두길 원하시는지 묵상하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알마티에서 유일하게 합법적 진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외국인 의사로서 이곳 동산 클리닉에서 현지 교회와 사역자, 현지인, 한국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입원실이나 응급실이 없는 클리닉이기에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이 있지만, 우리 주님은 그 어떤 제한도 없으시기에 부르심에 순종하며 이곳에서 그 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클리닉을 통해 일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교회 이야기

 우리가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거 KOICA 협력의사로서 2년 반 동안 아스타나에서 다민족 교회를 섬겼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우리는 의사로서 이 땅을 섬기는 것 뿐 아니라 현지 교회에서 이곳 성도들과 함께 자라가며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함께 세워져가는 것에 대한 소망이 훨씬 더 컸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함께 섬길 교회를 찾는 일이 무척 중요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는 2012년 1월부터, 이제 겨우 시작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카자흐인 교회 공동체 일원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곳은 현지인이 담임 사역자를 맡고 우리 가정을 포함한 외국인 ㅅㄱ사 두 가정은 한 공동체로 묶여 그들을 돕는 역할을 하는 현지인 중심의 교회입니다.

 카자흐 민족은 카자흐스탄 국민의 65% 를 차지하지만 복음화율은 1% 에도 미치지 않는, 미전도 종족입니다. 이전에 섬겼던 다민족교회와 달리 러시아어가 아닌 카자흐어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면서 카자흐 인들의 삶과 문화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때로는 그들과 함께 힘들어하고 기뻐하며 지난 2년 6개월 동안 성도들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청년들과 함께 찬양팀을 맡고 있고 목요일에는 지역 주민을 위한 피아노 레슨, 수요일에는 기도회 밤을 통해 현지인들과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않았던 귀한 카자흐인 교회 공동체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곳을 통해 지난 2년 반 동안 이 땅 성도들의 어려움과 고민, 그리고 주님을 알지 못했던 많은 영혼들이 감사의 눈물로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게 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 일에 우리가 바로 증인입니다.

가족 이야기

 우리 가정이야말로 한국의 평범한 기독교 가정입니다. 그런 우리 가정이 지난 3년간 이곳 알마티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살아왔으니 그 일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일하심이 있었는지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뉴질랜드에서의 1년간의 선교훈련을 마치고 알마티로 가기 직전 형민이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하지만 다 갈 수 있겠는데.. 카자흐스탄은 안 갔으면 좋겠어요." 웬지 모르는 불안함과 걱정에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맘을 토로하던 형민이의 이 고백은 알마티로 가는 길을 앞둔 우리 가족 모두가 가진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믿는 구석은 하나님 그 분이 우리 앞 길을 보이실 것이라는 믿음뿐이었으니까요.

 3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아이들은 이곳을 무척 좋아합니다. 이곳에 친구가 있고 집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렇게 무섭고 어려운 일을 겪었음에도 이 땅을 사랑하고 이곳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우릴 변화시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미래에 대한 염려가 있고, 때로는 ㅅㄱ사라는 무게가 우리를 그렇게 누르지만, 여전히 우리 모두가 이 땅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하나님이 이 땅에서 하시는 일을 보며 가슴이 뛰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빚어가고 계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희 가족은 6월 14일 인천공항으로 귀국합니다. 귀국 직후에는 지난 3년간 만나질 못한 양가 가족, 친척들과 시간을 보낼 계획입니다. 이후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있을 강원도에서 있는 안식년 ㅅㄱ사 수련회에 참석한 뒤 7월 8일 포항 선린병원 방문, 7월 15-16일 대구 동산의료원 방문, 7월 17-18일 서울 IS 디브리핑(안식년 후 점검 및 보고) 등 많은 일정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7월 말부터는 지난 4년 동안 함께 기도와 물질로 섬겨주신 전국의 동역자님(특히 부산의대기독학생회 선후배님들)을 찾아 뵙고 저희들이 보고 들은 것을 중거하고픈 맘을 가지고 있습니다. 7월 27일부터 8월 10일까지는 포항 충진교회 안식관에 머물 예정입니다. 알마티로 다시 출국하는 날은 8월 22일입니다. 짧은 안식월 일정이지만 그 분 안에서 몸과 마음이 새롭게 되는 은혜가 넘치길 기도합니다.

 

[ 기도 제목 ]

 특별히 이번 안식월 기간동안 있을 포항 선린병원과의 만남을 위해 기도합니다. 선린병원은 2010년 6월 저희가 처음 해외 ㅅㄱ사로 헌신하고 고국을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기도와 물질로 저희 가정을 후원해온 동역단체입니다. 제가 고국을 떠나기 직전 4년 3개월 동안 근무했던 직장이기도 하지요. 이 병원에서 아침마다 드려지는 예배와 해외 ㅅㄱ사를 향한 간구는 늘 제 귀에 울리고 있습니다.

선교기지병원의 기치를 내걸고 열방으로 ㅅㄱ사를 파송했던 선린병원은 최근 몇 년간 재정적 어려움과 경영진의 교체를 겪으며 ㅅㄱ사를 계속 파송하지 못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으로선 선린병원은 재정적 측면 뿐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친밀한 동역자입니다. 저희 가정이 시작한 주님과의 여행의 출발지이니까요.

 선린병원이 계속 저희 가정과 함께 주님이 이끄시는 열방을 향한 길을 걸어가도록 기도해 주세요. 선린병원은 통상 매 3년마다 해외 ㅅㄱ사들과의 파송 계약을 연장해 왔으나 최근 대부분 ㅅㄱ사들과의 후원 약정이 종료되고 있습니다. 병원의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많은 직원들도 함께 고통받고 있다는 얘기도 듣고 있습니다. 올 여름 선린병원에서 내려질 결정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의 은혜 속에 동역자님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갑니다.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다음 번 기도편지는 안식월 후 10월에 찾아갑니다.

 

알마티에서

이성훈, 이선화, 형민, 시은, 성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