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 보내는 편지 - 2014년 2월 (27호)
계속되는 2월 추위로 사방이 온통 움츠려드는 알마티에서 문안드립니다. 잦은 눈에다 2주간 계속되는 영하 25도의 한파 탓에 따뜻한 봄날만을 기다리게 되지만, 그래도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겨울이야말로 이곳을 더 이곳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병원 이야기
아무리 강추위라 하더라도 병원을 찾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입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향후 이 진료실이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을까 야심차게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고 주변 상황들도 녹녹치 않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역에 있어서도 그 분만을 바라보며 따라가야 함을 깨닫게 하셨지요. 아마도 첫 사역 주기를 맞는 모든 M 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제가 있는 클리닉은 14년 전, 열방에 복을 흘러 보내려는 맘으로 지금 이 자리에 세워졌지만 한국인 의료 M 이 상주하며 진료하는 것은 제가 처음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지난 10여 년간 이어져 온 많은 분들의 기도의 성취로서 제가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고 한 편으론 이 클리닉을 이곳에 시작할 때 많은 분들이 가졌던 꿈이 제가 이곳에 오게 됨으로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클리닉을 성공적으로 키우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상을 갖게 하는 것이 의료 M 의 목적이 아니라 그 분의 뜻에 순종해서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임을 더 깊이 느낍니다.
지난 1월 14일, 카자흐스탄 보건복지부에서 제게 현지 소화기내과 의사 자격증을 발부했습니다. 지금까지는 한국 의사 자격을 이곳에서 인증받아 노동 허가를 얻어 진료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법적으로 세부 자격까지 인정받은 카자흐스탄 의사가 된 셈입니다. 1991년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 서구 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카자흐스탄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는 10년 전 이곳에 와서 쉼켄트(알마티에서 서쪽으로 700 Km 떨어진 카자흐스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에서 개업하고 있는 미국 의사 닥터 로리 와 알마티에 있는 저, 이렇게 딱 두 사람 뿐입니다.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한국인과 현지인, 그리고 ㅅㄱㅅ들을 섬기는 지금, 그 분이 내게 기뻐하시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늘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국에서나 이곳에서나 오직 한 가지, 나는 죽고 예수님이 사는 것입니다.
ㄱㅎ 이야기
보안을 이유로 우리는 주일마다 도시 밖의 I 지역에서 모임을 하고 있지만 수요일 밤에는 기존의 우리가 모이던 건물 내에서 기도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수요 모임은 보통 저녁 8시부터 자정 넘게 이어지는데 주일 모임보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기도와 말씀과 찬양이 더 풍성하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모임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친구와 친척의 소개로 처음 이곳에 와서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의 간증과 그들의 섬김을 보면서 주님을 영접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럴 때면 모두가 함께 손을 들어 기도하고 포옹하며 기뻐하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한두 번 주일이나 수요모임에 나왔다가 웬일인지 이제는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고 멀어지는 사람들도 한국에서와 똑같이 이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광채가 미치지 못하게 한다고(고후 4:4)... 그래서 이곳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투는 지리적 한계를 뛰어 넘어 이 기도편지를 받아보시는 후원자들도 함께 참여하여 싸울 수 있는 우주적 전쟁입니다.
알마티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지역에서 그 분의 이름이 높아지고 사람들의 삶들 가운데 지식이 아닌 인격이신 그리스도가 경험되어지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우리 ㄱㅎ는 아직 공식 이름도 없습니다. 그저 샹으락 ㄱㅎ 라고 아뢰 주세요. 세상의 신의 미혹을 떨쳐내고 주님 앞에 엎드리도록 이곳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가족 이야기
우리 가정의 첫째 형민이는 7학년입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3월에 중 2가 되었겠지만 해외로 나오며 학제 차이로 인해 3월에는 7학년(중1) 2학기가 시작된답니다. 이제 형민이는 아이가 아닙니다. 물론 여전히 차분하고 신중한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느 남자 아이들처럼 조금씩 독립심이 생기고 스포츠도 즐기고 있지요.
이곳 MK 학교는 정책적으로 스포츠를 장려하고 있는데 현지 학교는 물론 해외 MK 학교들과 가을에는 축구 리그, 겨울에는 농구 리그를 벌이고 있습니다. 한 학년이라고 해 봤자 10명 남짓인 학교지만 Junior Team 농구 선수로 선발된 형민이는 오는 3월 5일부터 9일까지 부모를 떠나 우즈벡 타쉬켄트로 CABC(중앙아시아 농구대회) 참석차 떠나게 됩니다. 난생 처음 부모를 떠나 혼자 해외로 가는 여행입니다. 형민이가 안전하게 경기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 가정의 기존 카작 비자 만료일이 3월 4일인데 형민이의 출국 전에 카작 비자가 잘 연장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일부 후원자들께는 형민이의 여행 경비 후원을 위해 이곳 학교에서 시행하는 ‘자유투 이벤트’ 를 소개드렸었는데 모두가 흔쾌히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 글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유달리 2월 추위가 심해 가족의 건강 상태도 적신호가 들어옵니다. 평소 비염이 있는 형민, 공기 난방으로 인해 건조해진 환경에서 심해지는 성은이의 아토피 피부염, 추위에 늘 약간씩 떨며 사는 이선화 M의 어려움이 오래 가고 있습니다. 남은 겨울 동안 위축되지 않고 건강하게 이곳 사람들을 만나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 기도 제목 ]
1. 알마티에서 3년째를 보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역 주기가 끝나가는 것을 보며 의료 사역과 교회 사역 가운데 주님의 뜻을 잘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특별히 올 여름 안식월로 잠시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장기적인 사역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가정을 파송, 후원하고 있는 포항충진교회, 포항선린병원, 대구동산의료원 직원선교회, 부산의대기독학생회와 아름다운 동역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2. 지금 카자흐스탄은 큰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ㄱㅎ 사역을 외국인 M이 할 수 없게 되면서 현지인 사역자가 속속 기존 등록 교회의 리더쉽으로 나서게 되고 이를 통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이 땅을 향한 우리 아버지의 뜻입니다. 할렐루야! 이 땅의 외국인 M 들이 현지인 사역자를 아끼고 존중하며 함께 하나 된 그 분의 ㄱㅎ를 세워 가도록, 현지인 사역자들이 우리 주님을 더 깊이 경험하며, 용기를 얻도록 기도해 주세요.
3. 지난 번 기도제목에서 시은, 성은이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J 선생님네 아이들과 잘 헤어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렸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잘 받아들이고 큰 충격없이 잘 지나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아뢰고 계시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알마티에서
이성훈, 이선화, 형민, 시은, 성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