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 보내는 편지 - 2013년 2월 (21호)

새해 들어 첫 인사드립니다. 유난히 많았던 폭설로 두껍게 눈얼음이 쌓인 도로는 따뜻해진 기온 탓에 밭고랑처럼 깊게 패인 바퀴 자국을 내면서 빙판길 주행을 더욱 아슬아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올 겨울 극심한 추위로 차량 시동이 걸리지 않아 두 번이나 견인차 신세를 지고, 빙판길 차량 접촉 사고도 두 차례나 있었음에도 그 분의 은혜로 올 겨울 우리 가족은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평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1. 병원 이야기

 우리 병원은 매주 월요일마다 직원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시간이 있습니다. 제가 알마티에 오기 전부터 있어 온 모임이지만, 타의에 의해 시작된 탓에 직원들의 참여도와 열의가 그리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새로 시작하기도 어려운데 기존에 있던 이 모임이 시들해져선 안 되겠다 싶어 모임 시간을 조정하고 가능한 많은 직원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격려했습니다. 물론 카자흐스탄에서는 종교 기관이 아닌 곳에서 종교 행위를 하는 것은 고발당하는 사안이기에 직원들의 자발성을 보장하면서 조심스럽게 시작해야 했습니다.

 매주 우리 병원을 찾아와 이 예배를 인도하는 분은 현지인 젊은 목사인 ‘바실리’ 목사님입니다. 타쉬켄트 출신으로 6년 전 알마티로 온 그는 아직도 국적이 우즈베키스탄입니다. 원래 학기도 선수였던 바실리는 젊은 시절 방황과 절망 중에서 하나님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혼자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우리 주님은 이 청년을 만나 주셨습니다. 알마티로 건너와 신앙이 성장했고 어느 교회의 신학교 과정을 거치며 전도사 생활을 하던 중, 다른 사역자의 부탁으로 월요일마다 우리 병원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1년 6개월의 시간 동안 청년 바실리 목사님과 교제하면서 이 형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작년 5월 바실리는 같은 교회 자매인 ‘비까’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처음 알마티에 왔을 때 자신에게 말씀을 가르쳐 준 성경 선생님이었습니다.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따로 만남도 가지면서 그에 대한 신뢰는 깊어져 갔고 이 젊은 사역자를 격려하고 함께 섬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 바실리 목사님은 알마티 외곽의 ‘부랄다이’ 라는 지역의 교회를 맡아 도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알마티 내에는 그래도 많은 사역자들이 활동하지만 알마티를 조금만 벗어나면 말씀 사역자를 찾기 쉽지 않은 게 이곳의 현실입니다. 

 새해를 앞두고 2013년에는 알마티 외곽 진료 사역에 대해 기도하던 중 바실리 목사님과 ‘부랄다이 진료’ 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월요일 예배로 방문하면서 마을의 믿지 않는 한 분을 심장이 안 좋다며 모시고 온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2월 20일 수요일부터 ‘부랄다이’ 지역에서 이동 진료를 하게 됩니다. 저로선 KOICA 시절부터 익숙한 일이지만 이전과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주님이 앞서 가시고 사람들을 직접 만나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2. 젊은 부부의 방문

 지난 1월 15일부터 2월 8일까지 한국에서 온 젊은 부부가 우리 집에서 함께 생활했습니다. 포항선린병원 내과는 모든 전공의가 수련 과정 중에 1개월 동안 해외선교병원에서 현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선린병원 내과 4년차 류병한 선생님과 이은겸 사모님이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오게 된 것입니다. 와 있는 기간 동안 병원 방문은 물론이고 카자흐스탄과 알마티에 대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기회가 제공되었습니다. 이 부부가 알마티를 떠나는 날은 우리 회사 소그룹 모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25일 간을 회고하며 많은 것들을 결단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고마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전공의 선생님들이 이곳을 방문해서 삶의 목적과 비전을 회복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우리 부부가 나누기도 했습니다. 올 2013년에는 그런 방문과 회복이 계속 이어지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3. 교회 이야기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년 밖에 되지 않는 어린 교회입니다. 비록 등록되지 않은 작은 지하 교회지만 이들과 함께 하면 할수록 카자흐 복음화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카자흐스탄은 90년대 중반까지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무척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교회가 시작되었고 일부 현지인들은 신학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물질만능주의와 세속화로 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버렸고 많은 리더들이 실족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회복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 S 지역에서 만나는 믿음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렇게 세상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복음화율 0.1% 미만의 카자흐인들 사이에 영적 회복을 갈구하는 현지인 성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 피부암으로 소천한 현지인 성도를 위로하기 위해 알마티에서 40Km 떨어진 Z 지역의 가정 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간절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 주일마다 알마티 북쪽 수십 Km 떨어진 O 지역과 B 지역에서 주일 예배를 위해 우리 지역까지 찾아오는 카자흐인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어떠한 지원이나 교통 편의를 제공 하지 않음에도 추위 속에서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한 번은 그 중 한 분에게 물어봤습니다. “O 지역에는 교회가 전혀 없나요?” “아니요. 교회가 있긴 하지만 러시아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카작어로 예배드리는 이곳이 너무 좋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 분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자신들의 모임을 그 곳에서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2013년을 맞으며 하나님이 카작인들 가운데 행하시는 놀라운 부흥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4. 가족 이야기

 한 겨울 속에서 물 없이 지내다가 결국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오는 젊은 부부를 맞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엄동설한에 이사해야 했지만 감사하게도 이사 당일은 따뜻한 날씨였고 드디어 물 걱정이 없는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그래도 여전히 정전은 자주 있습니다.) 할렐루야! 작년 겨울에는 성은이 아토피 피부염이 크나큰 기도 제목이었는데 올 겨울은 작년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습니다. 형민이의 축농증은 여전하지만 이를 통해 더 큰 은혜를 주실 그 분을 신뢰합니다. 회사 식구들과 2주일에 한 번씩 소그룹 모임을 하고 있고 섬기고 있는 S 교회와도 비즈니스 미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임들을 통해 한겨울 속에서도 새 힘을 공급받는 것 같습니다.

 

[ 기도 제목 ]

1. 미전도 종족으로 남아 있는 카자흐 민족이지만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하는 밀알과 누룩을 여기저기서 발견합니다. 폭발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특별히 알마티 도시 안의 S 지역에 있는 교회, 알마티 북쪽을 따라 조금씩 믿음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O, B, Z 지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Z 지역의 ‘싸이얏’ 이라는 성도가 피부암으로 소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2. ‘부랄다이’ 에서 이동 진료를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문이 열리길 기도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 지역 교회를 맡고 있는 바실리 목사님의 영적 건강을 위해, 또 그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카작 국적 취득 과정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머물도록 기도합니다.

 

3. 우리 가족은 오는 4월 초, I 회사에서 주최하는 특별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됩니다. 첫 term 을 맞는 모든 회사 직원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이 훈련 코스를 통해 이 시대를 향한 특별한 부르심에 기쁨으로 뛰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알마티에서

이성훈, 이선화, 형민, 시은, 성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