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서 보내는 편지(13호, 2011년 11월)
늦가을의 길목에서 문안드립니다. 지난 주 내내 알마티에는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한국에서도 주로 남쪽 지방에서만 살던 우리 아이들로선 하루 종일 내리는 눈과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마냥 신기했던 한 주였습니다.
1. 대구에서 온 단기의료팀과 병원 재개원식
지난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대구 동산의료원 단기의료팀이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다른 공식 행사나 식사도 마다한 채 밤 10시까지 수술에 매달렸던 팀원들의 섬김으로 3일 동안 백내장 수술 8건, 하지 정맥류 수술 및 시술 20건을 포함한 많은 환자들의 진료와 수술이 차질 없이 치러졌습니다. 열심히 씨를 뿌리고 물을 준 이들의 섬김이 그 분의 때에 결실을 맺으리라 믿습니다. 이번 단기 팀 방문 기간 동안 병원 재개원식을 열고 이곳에서의 사역을 공식적으로 알릴 기회가 있었는데 알마티 시 보건복지국장, 알마티 시 의회 의장 등이 참석하는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2. 병원 재등록
지금 외국인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합법적으로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가를 취득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원칙적으로 외국의 의사 면허가 유효하지 않지만 알마티-대구시가 맺은 MOU를 기반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는데 시(市) 보건복지국에서 요구한, 개인 자격에 관한 서류들은 아포스티유 인증 및 현지어 번역, 공증 후 제출하였지만 시(市) 경제국으로부터 제가 일할 의료기관의 미비 서류들을 더 보완하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습니다.
알마티에 소재한 모든 공공 및 사립 의료기관들은 5년마다 등록을 갱신하는데 알마티 동산병원은 그동안의 보수 작업으로 인해 이를 제 때 시행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몇몇 실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병원의 등록 갱신은 저의 현지인 진료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에 이를 해결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3. 진료 시작
알마티 동산병원을 설립한 대구 동산의료원은 1899년 미국 북 장로교회에서 파송한 존슨 선교사가 설립한 경북 지역 최초의 서양 의료기관에서 출발합니다. 설립 100주년이 되던 지난 1999년, 받았던 사랑을 지구상의 또 다른 지역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현재 위치의 건물을 구입하고 알마티와 카자흐스탄은 물론 중앙아시아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고자 알마티 동산병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현지인 의료인 체제로 운영되면서 이 같은 비전을 수행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2011년 병원 개보수 공사와 함께 의료장비 도입 및 한국인 의사 파송 결정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 가운데 사람의 순종으로 이 비전이 조금씩 성취되리라 기대합니다.
아직 병원 등록을 갱신해야 하는 등 많은 문제가 있지만 알마티 시 당국이 이미 제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상태이기에 필요한 행정 절차를 밟으며 오는 11월 14일부터 이곳에서 진료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4. 불법이 강물같이
지난 주 이곳 소방서에서 한 사람이 나와 병원 소방시설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돈을 받아갔습니다. 병원 천장에 스프링쿨러 시스템이 없고 1층 창문에 창틀이 있는 게 문제가 된다는데, 직원들 말로는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문제를 제기하고 벌금을 물린다고 합니다.
문제는 15,000 불이라는 터무니없는 벌금을 발부한다고 직원들을 위협한 뒤, 3-4백 불 정도의 개인 돈을 챙기면서 200불 정도의 벌금 고지서만 발부한다는 점입니다. 2년마다 한 번꼴로 이렇게 찾아온다는데 이곳에선 이런 일도 허다합니다.
조그마한 자신의 권한을 극대화해서 돈을 받아내는 것, 여기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좀 이해하시기 어렵겠지만 예상이 안 되는 곳. 비리와 뇌물로 유지되는 곳이 바로 알마티입니다.
5. 가정 소식
이사한 집에서 조금씩 적응하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이번 주부터 몇 몇 가정을 저희 집으로 초대할 계획입니다. 아이들이 들어갈 MK 학교 공사는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아 아직 임시 건물에서 수업을 하고 있지만 반 친구들과 많이 친해져서 처음보다 공부하기가 많이 수월하다고 합니다. 아내는 2주 전부터 카작어 수업을 시작했고 저도 지난주부터 러시아어 공부를 재개했습니다. 단기팀이 돌아간 뒤, 분주했던 시간을 정리하며 장기 사역을 위한 초석을 놓고 있습니다.
보안상 팀 얘기를 많이 못 전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이곳에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2 주마다 있는 팀 모임 덕택인 것 같습니다. 지난 주 또 한 명의 일군이 이곳에 오면서 저희 회사는 이제 5가정이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 기도 제목 **
1. 카자흐스탄 정부는 지난 2011년 10월 24일 두 개의 새 법을 발효하였는데, 이 법은 종교의 자유를 심하게 제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법은 종교 단체의 정부 등록 절차를 복잡하게 설정하였는데 기존 종교단체들도 1년 내에 재등록해야 하며 50명 이상의 현지 교인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부모가 반대하는 종교 활동에 어린이의 참여를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이 법을 통해 오히려 현지 교회가 더 튼튼해지고 현지인 지도자들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2. 알마티 동산병원에는 약 9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저 외에도 현지인 의사 1인, 간호사 1인, 임상 병리사 1인, 회계사 1인, 관리인 1인, 청소인 1인, 야간 경비 2인입니다. 한국인 의사를 바라보는 그들의 맘 속에는 긴장과 불안감 외에도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따라올 변화 속에서도 불필요한 오해 없이 이들의 맘을 열 수 있도록, 주님이 주시는 지혜를 제가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3. 둘째 시은이가 요즘 부쩍 무섭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가끔 왜 무섭냐고 물어보면 이곳 사람들은 미소 짓지도 않고 말도 거칠게 한다며(러시아어의 격한 소리들이 그렇게 들리나 봅니다) 솔직한 속내를 표현합니다. 길을 지나가는 아저씨를 봐도 무섭고,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만 아빠 손을 꼭 잡습니다. 집에 들어와서도 아래, 윗 열쇠를 두 번씩 꼭 돌리는 시은이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 마음 속에 파고드는 두려운 맘이 사라지도록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세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이성훈/이선화/형민,시은,성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