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이야기

부족한 제 홈에 들어오시는 분들께 전 위로와 희망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번 1차  의료폐업 투쟁(6.18-25) 당시, 제 홈의 What's New?에는 전공의 사직 투쟁에 참여 하는 저의 생각과 함께 그 날 그 날의 언론 기사를 스크랩해서 올렸었지요....하지만  사태가 일단 진정되고 난 뒤 제 홈을 다시 보았을 때 ..... 웬지...그 많은 의료대란 관련 기사들이 제 홈을 너무 어지럽혔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아마  꿈과 희망 그리고 위로같은 것들만이 제 홈에 나타나야 한다는 생각이 내 속에서 고개들었나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불씨를 그대로 안고 일단락된 의약분업 관련 사태는 다시 촉발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다시 지난 7월 29일부터 병원에 출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3주째에 접어드는 군요...

마지막 제 홈의 update날짜가 8월 2일 것을 보면서도  전 .....새로운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최근 수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여행도 다니고 있지만 의약분업과 관련된 이 혼란된 세상에 관한 나의 생각이 우선이기에 다른 글보다 의약분업에 관련된 내용을 적어야 했지만  다시 제 홈이 끝없는 싸움에 휘말 리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사태가 끝날 때까지 그냥 이대로 있을까....이렇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오늘 교회에 다녀오고 난 뒤 용기를 얻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투쟁하고 있는지에 대해 제 홈에 들어오시는 분들께 다시 얘기드려야겠다는 의지가 새록새록 돋아나게 되었습니다.

1. 왜 다시 병원을 뛰쳐 나왔는가?

왜 다시 시계를 6월 23일 이전으로 돌렸는가?  아마 이게 궁금하실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6월 23일 여야 영수회담에서 약속한 약사법 개정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으시겠지요? "아니? 약사법을 개정하지 않았소? 그것도 의료계의 입장을 수용해 약사의 임의조제를 조장한다는 약사법 39조 2항 즉 낱알로 약을 팔 수 있다는 조항을 없애고 상용처방약으로 지정된 600개의 약품에 대해선 일체의 대체 조제를 금하지 않았소?"

바로 이 곳이 논의의 출발점입니다.   물론 약사법을 개정해서 임시 국회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소집한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의료계가 개정 과정에서 분명하게 반대 의견을 보인 이 개정약사법은 약사의 임의조제와 대체조제를 금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합법적으로 인정해 준 결과가 되었기에 여야 영수회담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첫 번째 폐업투쟁과  같은 마음으로 다시 병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사법을 개정하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며칠 전 새로 임명된 최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계에게 재진료와 처방료를 천 원씩 인상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약사법의 시행규칙을 의료계 등 각계와 합의해서 조정하겠다고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은 사태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임의조제와 대체조제에 관하여 개정 약사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개정 전 약사법

                   이번에 개정된 약사법

1. 약품의 낱알 판매를 허용                                           ---------------------------->      약품의 낱알 판매를 금지함

<무엇이 잘 못되었는가?>

개정 이전부터 약사법에는 약사의 임의 조제(의사 처방 없이 마음대로 약을 조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고 약사들도 양심에 맡겨 달라고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임의조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동네약국에서 감기약을 지어 주는 일을 말합니다.)

약품의 낱알 판매를 금지하는 이유는 의약분업은 국민들이 불편하더라도 약물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시작하는 것이니만큼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의해서만 조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만일 일반의약품의 낱알 판매를 허용하는 경우 약사들은 낱알로 판매한다고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A약, B약,C약을 한 알씩 복용하도록 이야기하고 판매함으로써 사실상의 조제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사는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없는 사람인 건 아시죠? )

새 약사법을 보면 이 부분에 있어 아무 문제가 없이 제대로 개정된 것처럼 보입니다.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에 대해 배운 적이 없는 약사들이 의사를 흉내내어 처방해 온 지난 40여년간의  약국의 조제 관습을 이번에야 말로 없앨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천만에 말씀.... 문제점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뭐냐하면 이번에 약사법을 개정하면서 지금까지 40-50알 이상 포장해 온 약품의 최소 포장 단위를 제약 회사의 자율에 맡기기로 개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1알짜리 나 10알짜리(3일치 약용량) 포장을 허용하고 이것을 그대로 판매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포장의 최소단위를 자율화 하는 것은 어떤 문제를 야기하게 될까요?   약사는 지금까지 해 온대로 무면허 진료행위를 통해 진단과 처방을 하고 난 뒤 굳이 낱알로 혼합 판매하지 않더라도 하루 또는 3일치의 약 용량이 그대로 들어 있는 A약 한 통, B약 한 통, C약 한 통을 섞어 팔아 사실상의 임의 조제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의료계에서 임의조제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시민단체와 보건복지부(이하 보복부)의 주장은 일반의약품의 최소 판매단위를 30알이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많은 불편을 준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타이레놀을 살 때는 항상 30알 이상 사는 것은 불편하고 비경제적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의료계는 지난 40년동안 부족한 의사 수 때문에 비의료인인 약사가  임의로 진단하고 처방,조제할 수 있도록 눈감아 준 우리 나라에서 의약분업을 시행하면서 약사의 무면허 의료행위인 임의 조제를 근절하려면  판매의 최소단위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약사에 양심에 맡길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국민의 편의만을 강조한다면 애시당초 의약분업을 안 하는 것이 국민 입장으로서는 더 편합니다.  의약 분업은 국민 편의보다 국민 건강을 위해 시해되는 제도입니다. 국민 편의보다 국민 건강을 더 우선한다면 임의 조제를 부채질하는 현 약사법을 개정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아울러 의료계는 구충약이나 두통약같은 가정 상비약은 1알 같은 소량 포장을 허용해서 슈퍼에서도 팔자고 얘기합니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인데 이런 약들을 OTC 약품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의료계에서는 정부에게는 임의조제를 근절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만일 철저하게 약사들의 임의조제를 근절하게 되면 지금까지 약국에서 약을 지어 먹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말 동네의원을 먼저 찾게 될 것입니다.(정부의 의도와는 반대로) 그런데 동네 의원을 찾는 사람의 경우 총진료비의 20%정도만을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정부가 관리하는 의료보험 공단에서  동네의원에게 나머지 금액을 지급하므로 정부의 의료비 부담이 더 커지게 됩니다.  의약분업은 애시당초 의료비 지출을 줄여 보려는 의도에서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제도이므로 정부는 의료비 부담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음성적으로 약사의 임의조제를 부채질 하게 되는 것이지요.

둘째, 약사들은 보건복지부에 의사보다 월등히 많은 숫자가 진출하고 있고 보건 의료 행정을 좌지우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약분업을 시행함에 있어 약사들의 기존 몫이었던 임의조제를 근절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건 복지부에서  보일 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2.  대체 조제를 허용하고 사후 3일내 의사에게 통보   ------------------>사용처방 600개 품목은 대체 조제 금지

<무엇이 잘 못 되었는가?>

이전 약사법에서는 약효 동등성 실험을 거친 약제의 경우 약사가 대체 조제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나 의사들은 이를 반대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약효 동등성 실험을 거친 약물을 의사의 동의하에 대체 조제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왜 의사들은 반대할까요?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바로 이 약효 동등성 실험이 미국과는 달리 시험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비교 용출 실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 때문입니다.

실제로 같은 성분과 용량이라고 하더라도 제법과 1% 이하의 불순물의 정도 등에 따라 사람 몸 안에서는 나타나는 효과가 다른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비교 용출 실험에서 같은 약물이라고 판정되더라도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생물학적 약효 동등성 실험(이하 생동성 실험)을 거쳐 인체 내에서의 효과가 동등하다고 확인 된 약제에 한 해 대체 조제를 허용합니다.

병원에서 실제 처방하고 환자에게 약을 투여해 보면 성분과 함량은 같은데도 불구하고 약효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의사들은 물론이고 환자 자신들도 많이 느낍니다. 같은 성분의 약이지만 밀가루 떡에 지나지 않는 약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의사들끼리는 얘기합니다. 또 같은 성분과 용량의 약이라고 하더라도 가격이 10배 이상 차이 나기도 합니다.  결국 생동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같은 약이라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물학적 약효 동등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험실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인체 내로 투여되었을 때 그 효과가 동일한지 확인해야 하므로 수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많은 임상 자료와 오랜 시간에 걸친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 같이 돈이 많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는 생동성 실험을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의사는 실제 환자를 치료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의사는 가능하면 자신의 임상 경험에 의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약제를 선택하고 처방하고 그 결과를 기대합니다. 만일 생동성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약이 누군가에 의해 변경되어 환자에게 투여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의사들은 이전 약사법에서 대체 조제를 불허하지만 우리나라 같이 가난한 나라에서 대부분의 약들에 생동성 실험을 거치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비교 용출실험만을 시행한 약물이라고 하더라도 의사의 사전 동의를 구하고 대체 조제를 할 수 있다고 입자을 밝혔습니다. 이는 자신이 책임지고 진료하고 있는 환자에게 어떤 약물이 대체되어 들어가고 있는지 당연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약사들과 제약회사는 반대였습니다. 약사들은 대체 조제후 3일 이내 통보만 하겠다는 것이었고 이전 약사법도 이렇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여 곡절 끝에 약사법은 다시 개정되었지요 . 개정 약사법에서는  소위 상용의약품을 정하고 수는 600개 내외로 한정시킨 뒤 상용의약품 내에서는 대체 조제를 금지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보험 공단에 등재된 약물의 수는 1만 8천 가지입니다. 결국 개정 약사법은 1만 7천 400개의 약물은 처방이 나면 대체 조제를 할 수 있도록 아예 법적으로 보장해 준 셈이 되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대체 조제를 하면서 의사에게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아예 없애 의사의 동의를 구하지 않더라도 대체 조제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한 술 더 떠 이전 약사법에서는 대체 조제를 할 때 환자의 동의를 구하도록 했는데 이번 개정 약사법에서는 환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항목도 함께 삭제해 버렸습니다.

이제는 만일 당신이 의사의 처방전을 가지고 약을 조제받더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다른 약으로 바뀔 수 있게 되 버린 것입니다. 한마디로 의사도 환자도 모르게 약사가 1만 7천 4백가지의 약품을 대체 조제할 수 있도록 합법화 한 셈입니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약사법이 오히려 개악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정하라고 했더니 오히려 더 나쁘게 만들어 버린 셈이지요

(이 외에도 600개의 약품 목록을 정하는데 의사보다 4-5배 많은 비의료인(부녀회장, 롯데리아 사장 등)과 상의해서 정하라고 한 규정도 있습니다. 이 규정은 지난 번 최선정 보복부 장관이 약사를 제외한 비의료인은 제외하겠다고 밝혔기에 다시 적지 않겠습니다.)

 

지난 번 1차 폐업 때 일주일 간의 폐업이라는 극한 투쟁을 벌인 이유는 국민의 건강을 지켜야 하는 의사로서 의사가 아닌 사람이 마음대로 약을 지어 파는 현실과 의사가 처방한 약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이 약사법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우리 나라 국민 건강에 중대한 위험이 초래된다고 전 의료인이 느꼈기 때문입니다. 비롯 지금 당장 몇 사람이 응급실을 방문하기에 불편하다고 하더라도 장래에 우리 사회에 미칠 큰 위협을 막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대체 조제 때문에 많은 약사들이 입건되고 있고 혼수 상태에 빠지는 유아가 생기고 있지 않습니까?

약사법이 오히려 더욱 개악된 이 때..... 의사들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가 들어주어야 할 의료계의 주장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3. 구속 및 수배된 의사협회 지도부를 석방하고 해제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구속된 지도부는 폐업을 주도한 협의로 잡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저의 전공의 사직을 어떻게 그 분들이 주도했다는 것입니까? 전 이번에 자의로 또 자필로 사직서와 진술서를 작성하고 병원 신분증을 반납하고 병원을 나온 것입니다. 이제 잘못된 의료 환경인 대한민국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기에 전공의직을 사직하고 나온 것입니다.

그들과 전 똑같은 의지와 행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와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한 어떤 이는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는데 제가 어떻게 지금 편안한 맘으로 집에서 잘 수 있고 병원에서 일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린 구속자가 석방되지 않는 한 절대로 병원에 다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일 이대로 우리가 물러 서고 지도부만 감옥에 들어간다면....... 향후 또 의료계가 받아 들일 수 없는 다른 이익 단체의 주장이 우리를 막을 때 누가 앞장서서 그 일을 막으려고 하겠습니까? 우린 절대로 자신을 희생하며 앞에 나선 이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며칠 전 최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은 천원을 올려 줄 테니 폐업을 풀라고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의료계의 자존심을 건드린 일입니다. 의료계가 마치 돈 몇 천원 때문에 환자들을 져 버리고 병원을 뛰쳐 나온 것처럼 매도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무지한 국민들로 하여금 의료계에 더 반감을 가지도록 계산된 고도의 정치행위로 의사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의사들의 정당한 요구를 피하고 싶습니다. 전문가 집단인 의사들을  의약분업 논의에서 밀어 내기 위해 정부는 의사집단을 비도덕적 집단으로 국민에게 보이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지금 정부에서 주는 당근을 먹고 물러서는 일을 창녀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이 복잡합니다.  정부는 왜 이렇게 억지로 준비안된 의약분업을 강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를 비롯한 모든 의료인들은 완전한 의약분업이 되기를 원합니다. 정부는 선진국과 같은 의약분업을 왜 시행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정부는 재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보건의료비를 증가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GNP를 가진 국가들이 보건의료비에 사용하는 비용은 총 GNP의 14-15%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4%입니다.  한 마디로 정부는 부실 기업과 금융기관을 해결하는데는 10조 이상의 재정을 사용하면서도 제대로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위해 드는 비용은 아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부의 의도적인 외면을 바라볼 때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실 의약분업의 시행으로 말미암아 의료기관들의 운영이 힘들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병의원에서는 약을 줄 수 없게 된 지금, 약국의 임의조제는 그대로 성행하고 있기 때문에 의원들의 환자수는 의약 분업 이전에 비해 50%나 격감했습니다. 게다가  최선정 복지부 장관이 밝힌 대로 우리 나라의 의보 수가(예를 들면 내시경 검사비, 진료비 등)는  다른 나라의 1/10-1/20 수준입니다.(복지부 장관의 말입니다.) 이 사회는 어떻게 병원을 운영하기도 힘든 보수를 지급하면서 의료인에게는 허준과 같은 헌신을 요구합니까? 자본 주의 사회에서 얼마나 이러한 억지가 통할 수 있겠습니까? 허준 처럼 최선을 다해 환자를 보다가도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이 생기면 손목을 자르는 사회가  바로 이 사회가 아닙니까? 의사들에게는 최상의 진료 환경을 요구하면서 왜 의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외면합니까?

물론 한 때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버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국민의료보험이 시행되기 이전의 얘기입니다. 50대 이상의 의사들만이 알고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지금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전공의들은 따뜻한 맘으로 교과서적인 최선의 진료를 펼치고 사회에 헌신하고자 하는 맘으로 병원에 들어온 젊은이들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요즘은 ......진료실에서는 "선생님,선생님"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병원 밖에서 의사를 욕하는 사람들이 떠 올려지고 점점 환자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의사가 가져야 할 사람에 대한 연민의 정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 괴로울 뿐입니다.

병원을 버리고 나온 의사들....의사인 나 자신도 괴로운 현실입니다. 정말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의 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새 시대의 의료인으로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인 의약분업 시행을 앞두고 다른 이익 집단에 의해 의약분업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을 그냥 지켜 볼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다음 세대의 의료인들 앞에서 2000년 여름 한국의 의료인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했냐는 비난이 너무 두렵기 때문입니다. 내 가족과 같은 국민들이 잘못된 의약분업 하에서 맞아야 할 의료 현실이 너무나도 위험하고 안타깝기에 오늘도 마음을 강하게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