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인 병득이와의 짧은 접촉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요즘입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응급실 문을 나서며
바라본 하늘은 웬지 저녁 하늘빛입니다. 낮 1시데....이제 점점 겨울로 계절은 달려가는가 봅니다.
해거름이 느껴지니 말입니다.
내과 의사가 하는 일 중 중요한 일 하나는 다른 과의 진료의뢰(consult)를 봐 주는 것입니다. 정형
외과나 신경외과 같은 외과계 담당의들도 내과적 문제에 늘 봉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흔히 발생하는
복통, 열, 변비, 검사 결과 이상등을 내과에 문의합니다.
내과 의국 한쪽에는 consult지를 모아 두는 곳이 있습니다. 오늘도 난 consult를 보기 위해 정신과 병
동으로 향했습니다. 진료 의뢰를 한 의사는 정신과 3년차 이국희 선생입니다. ...
정신과에 consult를 보러 갈 때마다 즐거운 일이 있는데 그것은 재미있는 후배 병득이와 만날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제 정신과 레지던트 2년차인 병득이는 기독학생회 후배입니다.
언제 봐도 맘이 편하고 정겹고 재미있는 후배입니다. 함께 학생 시절의 즐거운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지요.
가끔씩 consult 보러 갈 때 병득이와 정신과 병동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consult지의 내용은 환자가 하복부 통증을 호소한다는 거였습니다. 가끔씩 흉통도 있고....
보통 consult지를 들고 가면서 난 그 환자에게 생길 수 있을 법한 일들과 가능한 처치들을 떠 올리며
갑니다. 이 환자는 신체형 장애와 공황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적혀 있어서 한 편으로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필요한 검사는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정신과 폐쇄 병동으로 가기 위해 건물 끝쪽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정신과 폐쇄병동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항상 직원용 벨을 눌러야 합니다. 그러면 안에서 아저씨 한
분이 문을 열어 주지요... 106호 병실로 먼저 가서 환자를 만났습니다.
50대의 아주머니였습니다. 언뜩 봐도 상당히 불만스럽고 염려하고 있다는 것이 얼굴에 적혀 있었습
니다. 난 하복부를 만져보고 외과적 개입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았고 그 동안 심한 변비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생각한 대로 일단 변비를 해결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환자와 인사한 뒤 정신과 병동
간호사실로 들어갔습니다. 이 곳에 환자의 챠트가 있기 때문이죠.
간호사실 안에서 환자의 챠트를 찾고 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병득이가 저기 앉아 있었습니다.
"여이--, 형 웬일입니까?"
"응.. consult. 요즘 정신과에서 consult를 많이 내네...."
"안 그래도 형...내가 막 또 consult내려고 한 게 있었는데..." 하고 병득이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난 이국희 선생이 의뢰한 환자의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고 병득이의 환자에 대해서도 적절한
치료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러고는 챠트에 consult 결과를 적고 있을 무렵이었다.
"선생님.." 창 밖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간호사실은 사방이 유리창문으로 되어 있다.
Mission 곡을 다시 한번 병동에 내 보내 달라고 조르는 남자 환자 옆에 20대의 젊은 아가씨가 우릴
보고 있었다.
그녀는 말한다. "선생님, 집에 전화 좀 해 주세요."
이런 환자의 요구는 내과에서 잘 있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정신과는 외부로의 전화 통화가 차단되어
있다. 이 말을 들은 내 속에서의 반응은 이런 식이었다. '안되요... 보호자가 이제 곧 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병득이의 안색은 바뀌었다.
" 그래요? 집에 전화를 왜 하려고?................(한참 후) 무서워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너무 무서워요... 아버지에게 가 있는게 낫겠어요...'
이 말을 들은 난 속으로 '그래......맘이 안정되는 곳이 낫겠지.....병원에 있으면 더 불안하지...' 라고
생각하며 계속 consult지에 답변을 적어 나가고 있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병득이의 물음은 나로금 계속 consult지에 눈길을 주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 ..........(나즈막한 소리로) 00 씨, 누군가가 지금 죽일려고 해요?" 병득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병득이가 다시 말한다.
"지금 이 병동 안에 있어요?...."
"예............"
"누군데?.............."
"할머니...옆에 할머니요."
이 말을 들은 병득이는 몸을 환자에게로 옮겨 그녀에게 더 다가갔다.
난 주위를 한 번 둘러 본 뒤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눈은 누군가에게 쫒기는 불안한 눈매였다.
".......죽일려면 흉기가 없잖아?" 이 병득이의 물음은 정말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아니........숟가락이 있어요."
"숟가락?......숟가락으로 어떻게 죽이지?"
"숟가락으로 제 눈을 파낼 것 같아요.."
난 정신과 의사인 병득이가 어떻게 환자를 interview하는가를 유심히 보았다.
"생각해 보세요...할머닌 00씨보다 힘이 없어요..그런데 어떻게 00씨를 죽일 수 있겠어요?"
병득이 그녀에게 insight를 심어 주려 하고 있었다.
난 서둘러 consult지를 챠트에 끼우고 자리를 빠져 나왔다. 계속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어색해서였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도....
병동문을 열어주는 아저씨의 인사를 뒤로 하고 난 엘리베이터을 다시 기다리면 창가로 눈을 돌렸다.
그녀의 모습과 집에 전화를 해 달라는 환자로부터 망상을 찾아 내는 정신과 선생님의 진지한
대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정신과에는 아침마다 기도하고 성경보는 환자들도 많다. 그들은 가정에 마귀가 들어와 신앙생활을
하는 본인을 가족들이 핍박하고 자신을 이 정신병원으로 몰아 넣었다고 얘기한다.
한마디로 박해를 받는 것이었다. ...... 그들의 챠트를 열어보면 모두 남편을 의심하는 정신병적 증세나
타인을 학대하는 이상 증세가 있다는 이유로 병원에 들어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정말 신앙인이고 그의 보호자들이 정말 마귀의 앞잡이들인지.....난 그 정신 병동에만 가면
늘 혼란스러웠다.
병원에 있는 나는 오늘도 많은 어려운 질문 사이로 걸어 다닌다.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살기로 한 우리는 어떻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든 이들을 대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정신과 환자들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정신과 의사인 병득이를 보면서 전문 직업인으로서 직업 현장에서 자신의 이러한 일에 맞부딪치는
모습을 보았고 그의 당당하고 침착한 태도가 나로 색다른 느낌을 가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