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과 싸우는 내과 의사

결핵과 싸우는 내과 의사의 삶

대학병원에는 많은 환자들이 있고 그 중에는 결핵과 같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는 환자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핵 환자를 대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습니다. 웬지 그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이고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시경실에 함께 근무하는 황 선생님은 나 보다 나이가 2살 많은 31살입니다. 대학병원 인턴을 마치고

바로 군에 갔다왔고 이후 내과 레지던트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는 선배였지만 지금은

나보다 한 년차 아래인 2년차입니다. 아직 미혼이고요.

2년차때 소화기 내과를 rotation하면 힘드는 점이 여러 가지입니다. 일단 내시경 하는 동안에 피검자가

내시경 fiber를 물지 않도록 안전 장치(mouth piece)를 잡아야 하는 일이 있고 내시경 검사 후에 직접

내시경을 씻고 소독한 뒤 다음 환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모티터에 환자

이름을 적고 전처치제인 midazolam 2.5mg, buscopan 5mg iv를 해야 하며 컴퓨터 PACS 에 환자를

등록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게다가 2년 차 때도 환자의 담당의가 됩니다. 상태가 안 좋을 때면 내시경 실에서 근무하는 중에도

여러 번 병동으로부터 호출을 받게 되고 그렇다고 병동으로 갈 수도 없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최근에는 2년차도 응급실 당직을 서라는 방침 때문에 더욱 바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황선생님은 환기가 잘 되지 않고 어둑어둑한 (모니터를 잘 보기 위해 조명을 어둡게 합니다.)

내시경 실에서 묵묵히 일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선생님은 미추(cocyx)에 덩어리가 만져지는 걸 최근 알았습니다. 병원에 있지만 자신의 몸은 잘

돌보지 못하고 지내다가 계속 만져지자 MRI를 부탁해서 촬영했습니다. MRI 촬영 후 cocyx에

는 흔하지 않은 혈관종(Hemangioma)라는 추정진단을 받았습니다.

워낙 흔하지 않은 추정 진단명이라 확진을 위해 황선생님은 국소 마취하에 절개해서 확진받기로

결심했고 대부분 국소 마취 전에는 술전 검사를 철저히 시행하지 않지만 그는 술전 준비 과정으로

흉부 X선 촬영을 시행 받았습니다.

그런데 흉부 촬영 상 폐결핵이 의심된다는 판독이 나왔습니다.

내과 레지던트로 근무하는 중에 폐결핵에 이환된 사람은 많습니다. 무엇보다 내과 의사들이 결핵

환자를 진료하면서 가장 많이 접촉하기 때문이고 중한 결핵 환자를 격리하고 있는 결핵 병동이 내과

의사실 바로 옆에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결핵약을 복용한다 하더라도 복용을 시작한 뒤 2주간은 여전히 전염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방사선학적으로 결핵이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결핵균이 나오지 않으면 좀처럼 결핵약을 투약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병동에도 늘 결핵이 의심되지만 검사가 진행 중이라 결핵 약을 먹지 않고 있는 결핵

환자들이 수두룩 합니다. 그들은 확진을 받으면 결핵 병동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방사선학적으로 결핵이 의심되지만 객담 도말 검사에서 결핵이 나오지 않으면 기관지 내시경을

시행해서 기관지 내를 세척해서 그 세척액을 가지고 결핵균이 있는지 염색하고 현미경으로 살핍니다.

그러면 대학병원에 있는 결핵 환자들은 결핵균이 3+, 4+ 로 나오기 일쑤입니다.

황선생님은 바로 기관지 내시경을 시행하지는 않고 비침습적 방법인 고해상도 흉부 CT( High

resolutional chest CT: HRCT)를 시행 받았습니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결핵이 현재 활성화된

상태인지 이전에 앓은 흔적인지를 알 수 있고 이렇게 진단하는 민감도와 특이도는 각각

95%이상이라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황선생님의 HRCT 결과는 active Tb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결핵) 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내시경실에

들어온 황선생님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미추에 있는 종괴가 걱정이 되어 시작한 술전 검사에서

뜻하지 않게 결핵이 발견된 것입니다.

결핵약은 먹기 시작하면 최소한 6개월 이상 매일 아침 10알 이상의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이것은 환자

에게 많은 부담을 안겨 줍니다.

또 다른 큰 문제는 현재 결핵균에 잘 반응한다고 알려진 약은 4종류뿐이고 나머지 4-5종류가 더

있지만 그 효과가 앞의 약보다는 뒤진 약들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내성을 쉽게 획득하는 결핵균을 없애기 위해 결핵을 처음 치료하는 경우 가장 효과적인 약 4가지를

동시에 투여해서 6개월 이상 투여하게 되는데 이것은 내성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결핵균이

이러한 약들에 내성을 획득하게 되면 결핵은 치료가 되지 않고 암과 같이 치명적인 경과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대학병원에는 이러한 약제 내성결핵(multi-drug resisitant Tb)이 많습니다.

이러한 내성의 가장 큰 원인은 환자가 불편하고 힘들다고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지 않기 때문이고

이러한 환자들은 결국 난치성이 되고 상태가 악화되어 대학병원에 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나와 함께 의국 생활을 하고 있는 레지던트 중 이미 3사람이 결핵 진단을

받았고 방사선과 레지던트 2사람이 결핵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친 업무와 과중한 스트레스로 면역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결핵균을 계속 의사의 호흡기로 보내는

환자를 그들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전까지 내과 레지던트 3사람은 결핵약 복용 후 현재는

완치되어 잘 지내고 있으나 방사선과의 2사람은 약제 내성 결핵에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약제 내성 유무는 결핵약을 먹기 시작한지 수 개월이 지나야 결과가 통보됩니다.(결핵 협회로부터)

방사선과 레지던트 2사람 중 먼저 감염된 사람은 여선생입니다. 약제 내성 결핵에 시달리면서 수차례

기관지 내시경과 CT를 시행 받았고 결국에는 한 쪽 폐를 완전 절제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결핵을 앓고 있는 중에 그녀의 남자 친구(현재 내과 레지던트로 근무 중 )는 선뜻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했고 함께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 놀라운 사랑의 힘입니다.)

방사선과의 두 번째 감염된 사람은 약 3개월 전에 발견되었습니다. 이미 감염된 여선생님과 함께 의국

생활을 하는 터라 모두가 기침만 하더라도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 기침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내과로

찾아 왔습니다.

그의 흉부 방사선과 소견과 객담 도말 소견은 역시 활동성 폐결핵이었고 몇 개월 후 알 게 된 사실은

그도 역시 앞의 여선생과 똑 같은 약제 내성 결핵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앞의 선생님으

로부터 전염된 것이라 여기고 있지요.

이 두 사람은 지금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약제 내성 결핵이라도 고전적인 결핵약을 복용하며

경과를 보고 있습니다.(뾰족한 방법이 없기에....) 그래서 병원 내에 있는 우리는 어떻게 보면 함께

위험을 나누고 살고 있는 셈입니다.

황선생님도 약제 내성 결핵일까 걱정이 됩니다.

점심 식사 후 황선생님과 같은 연차인 선생님으로부터 황선생님의 모친이 충격을 받으셨고 집안이

큰 걱정에 싸여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흉부 방사선 촬영을 시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직장 신검 차원에서 간접 촬영은 매년 시행하지

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당시에 심한 호흡곤란과 마른 기침이 있어서 촬영을 받았고 흉부 방사선 소견을 보고 나 스스로

Mycoplasma pneumonia로 진단하고 Erythromycin를 3주간 복용했었습니다.

우린 병원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환자와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두려움과 죽음을 늘 대하고

삽니다. 그러다가 결핵균과 같은 무서운 질병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의사의 헌신적인 면들을 외면한 채 나쁜 일을 하는 일부 의사의 예만 가지고 모든 의사가

나쁜 X 이라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 미워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불순종과 원망, 죄악 속에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학생 때 CMF 수련회에서

성경 공부 중에 인턴 같으신 예수님 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고

아픔을 어루 만지시면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시고 못 드셨습니다. 자신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구하고 사셨습니다.

며칠 후면 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제 부산대학병원 내과 생활은 1년 남짓 남았습니다.

결혼 후에 남자가 가지는 큰 변화 중 하나가 책임감이라고 합니다. 내가 결핵에 감염된다면 나의 가정

도 두려움에 싸이겠지요.....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습니다. 비록 내가 결핵에 이환되더라도

주님을 원망하지는 않겠지만 내 맘에는 큰 시련이 되겠지요.

그래서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면 병원 생활이 조심스럽고 하나님 앞에서도 조심스러워 집니다.

내시경실에서

수 많은 불치의 환자를 대할 때 예수님의 눈길을 가지기 원합니다.

결혼 후 우리의 가정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기 원합니다.

결국 내 인생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기에

늘 불순종하면서도

비에 젖은 강아지가 다시 제 집이 있는 대문 밖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앉아 있는 것처럼

하나님 존전에 의탁하며 긍휼을 기대하며 살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