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레지던트가 된 첫 주...
오늘 부터는 인턴이 아니다. 내과 레지던트의 첫 발을 내딛는 날. Hematology에서 subcharge일을 맡게 되어 홍진희 선생님에게 배우게 되었다. 어제 밤 3시에 집으로 돌아와 영훈이 옆에서 자고 짐을 싸고 나오면서 가방에 이것 저것 담으면서 앞으로 닥쳐 올 이 일을 어떻게 할지 염려가 되었다. 주일 날에 세상 염려로 머리에 차 오르는 것과 어제 밤 제 1회 부산대학 병원 소화기 내과 학술 집담회 후 밤에 코모도와 오렌지에서 시간을 보낸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은 꺼림칙하게 맘에 와 닿기에 예배드리는 주일날이 간절히 사모된다.
회진이 11시이기에 꼼짝없이 주일 오전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내 모습은 안타까움과 죄책감 뿐이었다. 다행히 원택이의 치방 의사실에서 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오후 1시 20분경 첫 회진이 마치고 식사와 커피를 마신 후 3시에 홍진희 선생님이 order를 낼 때 만나기로 했다. 난 즉시 1층으로 가 쇠문을 열쇠로 열고 안에서 밖에서 보아 눈치 채지 않도록 자물쇠를 잠가 두었다. 혼자 기도하고 말씀보고 일기 쓰고 하는 시간이 내게 없다면 내 삶은 정리되지 않은채 흘러 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젠 나와의 전쟁이다. 나의 겟세마네 동산은 이 카타쿰(지하 치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응급실 공사가 늦어지는 것은 다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원택이의 치방 의사실은 어두웠다. 난 전기 스탠드를 하나 가져다 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는 최신이라 걱정스러운 일이 없다. 전에는 노트 북을 사서 나만의 정리를 하겠다는 꿈을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의국비로 내 재산이 바닥나 버려 그렇게 할 순 없게 되었는데 치방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했다. (토요일에 의국비 2백만원을 넣었다.)
주일 날 저녁 영락교회 예배 참석하는 것을 고려해 보고 있다. 예배하지 않고 주일을 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저녁에 예배드릴 수 있는 그 곳이 참 고마웠다.
어두컴컴한 의사실에서 전기포트를 끓여 녹차를 마시며 CD로 흘러 나오는 Instrumental 'Love"를 들으며 ................ 해리슨 2권 만 들고.........옷은 특별히 준비하지
않았다. 가까워서.................. 그리고 각종 binder들과 성경 , 찬송가를 가지고 왔다. 나의 전부이기에............ 말씀을 암송하고 싶다.
1997.2.25화
subcharge를 시작해서 홍진희 선생님을 따라 다닌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아직 환자 이름과 질병을 완전히 match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니나 점점 어떻게 환자가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어렵게 돈 2만원을 원택이에게서 빌려서 청진기를 살 수 있었고 어제 밤에는 시간을 내어 아버지가 아파서 오셨다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이드로 1번, spinal tap 1번 본 것이 지금까지 procedure의 다 이지만 하나씩 배워 갈 거다. 병동 간호사의 "인턴 선생님" 이라는 호칭도 차츰 멀어져 가는 것 같고 이제 하나씩 시작하는 기분이다. 전과는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로의 첫 걸음이지만 다행히 진희 누나 밑에서 마음 편하게 잘 배우게 되었다. 제약회사 (clovana, micronomycin)의 식사도 있어 한결 부드러웠다.
일기를 2일 만에 써게 되어 기분이 좋다. 어제는 말씀도 못 보고 긴장한 탓인지 편두통이 다시 시작되어 오늘 아침 펜잘을 다시 복용했다. 부경 누가회에서 회지가 날아오고 9북에서 홍선생님에게 숙영이가 잘 봐달라는 부탁을 해 줘서 숙영이에게 그냥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보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내게 큰 고민거리이다. 이렇게 오늘 처럼 여유가 있을 때 이 카타쿰에서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말씀 요절을 암송하겠다는 의지는 다 어디로 갔는지.......................
오전 중에는 계속 한 2시간씩 수면을 취해야 유지가 되고.....밤에는 인턴 숙소에서 잔다.
화요일 승리의 생활은 이삭의 삶이었다. 밤 늦게 기도할 때마다 난 계속 눈이 뜨거워지고 눈물이난다. 왜 내가 눈물을 흘리는 걸까. 이 힘든 내과에서 off를 받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게 되어서........... 아니 그것보다는.......... 주일 날 예배도 온전히 드리지 못하여 늘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 뿐인 내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때
밀려오는 감격과 이렇게 불충성한 종을 보시면서 사랑과 위로해주시는 분임을 깨달을 때 ...... 밀려 오는 감사 때문에 눈물이 난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반역의 삶을 살았는데도 어릴 적 유년 주일 학교 때 부른 사랑의 예수님이 계속 동일 하시다는 사실이 내 맘을 녹이시는 것 같다. " 주의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우리가 오늘도 진멸되지 아니하도소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도소이다. " 이 말씀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잊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내가 느낀 어떤 사랑보다 큰 사랑이고., 사람들간의 사랑속에서 실패한 나이기에 더욱 영원한 사랑에 감격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기도 하기 전에 회개를 이야기하는 이 구절도 와 닿는다. 밤마다 부흥회 이면 좋겠다. 밤마다 내 맘이 녹아지고 새로워 지면 좋겠다.
비판하지 않고( 물론 남을 내리고 자신이 올라서려는 맘) 하나님의 방식인 사랑과 겸손으로 양보하며 살아야 겠다.
오늘 회식 중에 그래도 작년 이맘 때보다는 낫다는 말을 했다 .작년에는 인턴을 시작하며 다가올 일을 생각하며 얼마나 막막해 했는가............그래도 의국원들과 이제
조금씩 친해져 가고 내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면서 안전할수록 주님을 갈급하게 찾지 않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계속 갈급하게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실제 요즘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피조물인 내가 가지는 공허함과 메마름으로 혼자 괴로워하고 야릇한 죄책감에 싸인다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끊임없이 밀려오는 유혹에 싸우며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기에................
수요일날에는 현명이 형, 승현이 형, 재현이 형, 그리고 신권이와 원택이 현국이 등을 모두 만난 날이었다. 모두 반가와 하면서 장래의 불확실성을 잊고 지나간 이야기와
늘 그랬듯이 기독학생회의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hematology에서 실습학생들의 문제 낸다고 고생을 하고........2시가 되어서 치방 지하에 내려와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을 잊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 저자는 상당한 지식인과 깊은 수준의 인격을 갖춘 체험의 그리스도인이 분명하다. 난 도전 받고 내 마음이 다시 식어지고 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참을 수 가 없어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늘 말씀을 묵상하며 생각의 근원을 만나는 기도의 생활과 고아와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경건의 능력과 겸손과 온유로 서로를 대하며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주께하듯하라는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난 기도할 때마다 늘 나의 어린 모습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른 시절부터 주님의 알게하시고 중고등학생 시절 하나님만 바라고 그 안에서 고민하게 하시며 적은 체험들을 통해 누구보다 주를 알게하신 주님...... 이제 그 아이가 ...... 고신대 교정에서 신학생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상상해 보던 그 아이가 .... 숱한 성경암송과 찬양대회 속에서 내 삶이 장차 어떻게 변할지 나와 주위로부터 생각하게 만들던 그 아이가....... 이제 27세로 대학병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곳에서 내게 요구하시고 내가 갖추기 원하시는 것이 의학적 지식과 또 얼마나 깊은 하나님에 대한 체험과 묵상이며 내가 겪어야 할 작은 유혹들과 큰
시험들이 몇 번이겠습니까....... 아! 하나님..... 내 마음을 불 일듯하게 하지 않으시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매년 여름성경학교 때마다 그 사랑에 푹
빠지어 어린 입술들과 함께 주님의 계절을 보내던 내가 이제 이 광야에서 날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날 좀 인도하시고 용기와 위로로 이끌어 주십시오 ..." 또
내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는 부분은 나의 죄악을 주님 앞에 낱낱히 아뢰었을 때이다. 그 때 내 맘에는 한 없는 위로와 사랑이 느껴진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그 시간이 내게 회복을 주고 한 없는 결단을 하게 만들며 그 어느 때보다 깊이 하나님께 붙어 있게 만든다. ........................... [이 세상에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아무도 나보다 더 뜨겁게 더 자주 기도 하지 않는다면 그들 중에 몇 사람이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돌아오겠는가....] 무릎 P.27
1997.2.28금
2월의 마지막 날..........하늘은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다. 응급실에 어제 밤에 온 만성 골수성 백혈병 56세 아저씨............환경미화원이라는 딸에 말을 듣고 보니 고생을 많이 한 듯 할아버지 처럼 보였다. 어제 밤 삼선 병원에서 이리로 온 뒤 hydroxyurea 4.0g을 먹고 응급실에서 밤을 보내는데 환자의 Mentality가 stupor로 쳐졌다. lung은 어제 본 것과 별 차이는 없고 fever도 높았다고 하는데 홍진희 선생님은 leukostatic crisis에 의한 cerebral infarction 또는 hypoxic brain damage로 보셨다. 너무나 많은 백혈구 들이 뇌혈관을 막은 것이다. 임상병리에서 내려와 leukopheresis를 하루 종일 했지만 저녁 먹으러 자리에 앉자마자 응급실에서 홍진희 선생님에게 call이 왔다. 난 식사하고 가자는 선생님의 말에 혹시나 싶어 빗속에서 응급실로 가 holding온 것을 이야기하고 함께 응급실로 갔다. 두 딸과 한 아들은 많이 울었다. 아버지는 혼자 사신다고 했다 둘째 딸이 입은 빨간 파카는 비싸게 보이지 않는 싸구려 였지만 난 잠시 이 딸들이 아버지 밑에서 한 때 얼마나 아버지를 원망했을까...........그리고 얼마나 많은 하고 싶은 것들을 참으며 자랐을까.....라고 생각 되었다. 아들은 이야기했다............. 오후 회진이 마칠 무렵 로비에서 " 우리 아버지......고생 많이 하셨습니다......제발 좀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난 결국 사망한 환자의 몸에 붙은 여러 line을 제거하면서 remove 하면서 안녕히 가세요... 라고 얘기했다. 이 한 뿐인 걱정 뿐인 세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셨더라면...........아니.........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런 이들에게 다가가야 함에도..........
하루종일 홍 선생님이 응급실에 있는 바람에 바빴다. 내가 인턴 때 가기 싫은 네모.... 난 네모를 두 번 가고 필름을 찾고 검사를 챙기고 밤에는 보기 힘든 CLL환자의
병력을 기록했다. 왜 귀가 안 들릴까........ 저녁 식사 후에는 잠시 치방에 내려와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책을 읽고 한 시간 가량 잠이 들었다. 책은 내 맘을 계속
두드렸다. 그리곤 저녁 8시에 예정된 ALL환자의 spinal tap을 하기 위해 9북으로 갔다. Tap은 실패하고.......다음에는 잘 해야지...... anatomy를 좀 더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스도를 위해 일할 수도 있고 성경 공부에 장시간을 바칠 수도 있다.또한 우리는 전도와 개인 관계에서 가장 열렬하고 신실하며 가장 마음에 들게 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중 어느 한 가지도 깊은 기도가 없는 한은 진정한 효력이 없다. 우리는 선생을 수없이 하고도 모든 선한 일에 열매가 없을 수 있다. (골 1:10 주께 합당히 행하며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하나님께 적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적게 봉사하는 것이다. 많은 은밀한 기도는 많은 공적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의 조직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반면
기도의 고투는 거의 전무한 것이 사실이 아닌가....
기도의 가치와 필요성과 전능함을 나의 말로는 사람들에게 설득시킬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성령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하지 않는 죄를 깨우치셔서
무릎을 꿇게 하시고 불타는 심정과 믿음과 간절한 중보 가운데 주야로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만드실 때 우리는 진정한 기도에 몰두하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가운데 설 때 지나간 삶을 회고한다면 그 삶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은 기도없는 모습일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힘과 결실이 우리의 기도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는 우리의 기쁨도 기도의 응답에 있다고 상기시킨다.
(요 16:24 : 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